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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안대군(懷安大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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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방간(李芳幹)
시호(諡號)양희(良僖)
생년1364(공민왕 13)
졸년1421(세종 3)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자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
공신호정사공신(定社功臣)
공신호개국공신

[상세내용]

회안대군(懷安大君)
1364년(공민왕 13)∼1421년(세종 3). 조선 초기의 왕자.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방간(李芳幹).

부친은 태조이며, 모친은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이다. 첫째부인은 판서찬성사 민선(閔璿)의 딸이고, 둘째부인은 판서 황형(黃亨)의 딸이며, 셋째부인은 정랑 금인배(琴仁排)의 딸이다.

고려왕조에 벼슬하여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역임하였다. 조선왕조가 개창되자 1392년(태조 1) 회안군(懷安君)에 봉군되었고, 1398년 회안공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으며, 이른바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유배중인 1401년(태종 1) 회안대군이 되었다.

1398년(정종 즉위) 8월에 발생한 제1차 왕자의 난에 정안군(靖安君)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정도전(鄭道傳) 일파를 제거하는 데 세운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으로 책록된 뒤 개국공신 1등에 추록되었으며, 1399년 풍해도(豊海道) 서북면의 병사를 분령하였다.

이듬해 지중추부사 박포(朴苞)의 이간에 충동되어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난이 실패한 뒤에는 토산(兎山: 지금의 황해도 토산)으로 유배되었다.

1400년 2월에 3성의 장무(掌務)가 계(啓)하기를 “이방간이 사사로이 군대를 일으켜 골육을 해하려고 하였을 때 왕께서 처음에는 도승지를 보내시어 동병하지 말 것을 명했으나 듣지 않고, 군대를 발하였으니 대법으로 다스리소서.”라고 하면서 치죄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정종방원의 관용으로 가죄(加罪)되지는 않았고, 유배된 토산이 전일에 군사를 분령한 곳이라 후일의 염려가 있다 하여 안산으로 이치(移置)되었을 뿐 전지(田地)와 식읍을 받았으며 매년 원일(元日)에는 입경(入京)을 허락받았다.

1400년 9월에는 문하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익주(益州)로 이치되었다. 태종이 즉위한 뒤에도 계속 관용을 받아 이듬해 5월에는 태종이 보낸 의원으로부터 치료를 받았고, 같은해 6월에는 실행되지는 못하였지만 서울로의 소환까지 논의되었다.

1402년 대간으로부터 전렵으로 일을 삼는 등 뉘우침이 없으니 경계와 보전을 위하여 제주로 이치하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순천성(順天城)에 이치되는 것으로 그쳤다.

1404년 왜구의 화를 피하여 익주로 다시 옮겨졌으며, 1410년 8월에는 완산(完山)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1416년 형조‧대간의 집요한 청죄로 아들 이맹중(李孟衆)과 함께 공신녹권(功臣錄券)과 직첩을 몰수당하였고, 1417년 홍주(洪州)로 이치되었다. 세종치세 때에도 누차 치죄가 논의되었지만 상왕과 세종의 관용을 받았고, 1419년 노비 100구만 속공(屬公)되었을 뿐 천명(天命)을 누리다가 홍주(洪州)에서 죽었다.

오랫동안 『선원록(璿源錄)』에서 제외되다가 1605년(선조 38) 선원록교정청(璿源錄校正廳)의 계(啓)를 계기로 신설(伸雪)이 논의되었고, 1680년(숙종 6) 선원록이정청(璿源錄釐正廳)의 계품(啓稟)에 따라 그 자손과 함께 『선원록』에 재록(載錄)되면서 신설되었다. 시호는 양희(良僖)이다.

[참고문헌]

牧隱文藁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宣祖實錄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璿源系譜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명 : "방간(芳幹)"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歷代總要v04苞誘懷安大君芳幹擧兵作亂苞伏誅芳幹安置
國朝編年v01自內而出曰主上病重欲避寓諸王子盡入先是宮門皆設燈是夜無燈人亦疑之太宗佯如厠思之益安君芳毅第三男懷安君芳幹上黨君李伯卿追呼曰靖安君靖安君將奈何太宗曰何聲之高也又以手拍袂曰無計奈何與芳毅芳幹伯卿走出延秋門太宗
國朝編年v01怏不平謂人曰李茂雖預定社之謀功不滿於人心且反覆難測太宗聞之啓于上流苞于竹州未幾召還苞因此衘之謀作亂抵芳幹之第爲博戲是日適有雨苞曰古人云冬雨損道兵交於市宜愼之時赤祲見苞又詣芳幹第言曰天有妖氣宜愼處之芳幹曰何
國朝編年v01矣但宋氏无咎母不安予豈無人情乎令付處于外尋因政府之啓幷賜死妻子遠方安置○或曰無咎等乃元敬王后之同氣也芳幹之變亦多有功闔門被禍未知所坐何罪若犯逆則必不止此其撗驕不法則似無於明斷而世子待渭陽之道近於薄○上命書
紀年便攷v3五一男鎭安大君芳雨娶忠州池氏賛成事奫女三男益安大君芳毅娶鐵原崔氏知杆城郡事贈賛成事仁㺶女四男懷安大君芳幹娶驪興閔氏判書贈賛成事璿女後娶密陽黃氏判書亨女三娶金浦琴氏正郞仁排女六男德安大君芳衍以上 神懿高后誕
東國歷代總目v02己卯元年皇明建文皇帝元年還都松京○庚辰朴苞謀作亂伏誅○苞附懷安君芳幹謀害太宗大王遂擧兵義安大君詣太宗大王邸告變太宗大王啓于上勒軍與戰芳幹兵敗遂誅苞安置芳幹
歷代帝王紀年v01生六男二女○一子芳雨鎭安大君先卒○二嗣恭靖初封永安大君○三子芳毅益安大君○四子芳幹懷安大君因▣臣朴苞之亂子孫禁錮○五嗣太宗初封靖安大君○六子芳衍前朝登科○一女慶愼公主上黨君李行○二女
國朝捷錄v01懷安大君芳幹逆臣朴苞同起亂子孫禁錮
國朝人物志v1太祖第三男贊我太祖錄開國一等勳第一戊寅芳碩之難庚辰芳幹之亂芳毅佐翊定宗太宗皆有大勳太宗癸未上幸其第芳毅久疾扶出跪泣上亦下淚
國朝人物志v1知中樞院事朴苞自以功多不滿志怏怏太宗聞之啓于上流苞竹州未幾召還苞因謀作亂抵芳幹家爲博戲苞指言曰天有妖氣宜愼之芳幹曰何以處之苞曰謹出入整衣冠重行止如前朝諸王之例斯爲上
國朝人物志v1淸州人以武進佐太宗平芳幹難錄佐命功四等勳拜正憲大夫沔城府院君東國文獻錄太宗丙申卒上謂趙末生曰予
國朝人物志v1完豐君元桂子佐太祖開國壬申錄勳戊寅定鄭道傳亂錄定社功封完山府院君定宗庚辰平芳幹難加奮義翊戴佐命之號錄二等勳拜兵曹判書諡良度配食太宗廟廷東國獻錄抄天佑弟
國朝人物志v1長興人膂力絶人以武藝拔身太宗在潛邸天牧護聖躬於艱危佐景命於內討庚辰平芳幹之難賜推忠奮義翊戴佐命功臣號封長興府院君錄三等勳擢兵曹判書諡忠靖
國朝人物志v1谷山人以武進定宗庚辰平芳幹難拜嗣宗正憲大夫谷山府院君世宗壬寅嗣宗與右議政趙涓兵曹判書趙末生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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