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비(惠妃)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22D61CBE44FFFFU9999X0 |
생년 | ?(미상) |
졸년 | 1408(태종 8)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왕실 > 비빈 |

부 | 이제현(李齊賢) |

[상세내용]
혜비(惠妃)
미상∼1408년(태종 8). 고려 제31대 공민왕의 후비.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이제현(李齊賢)의 딸이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아들이 없자, 재상들이 명가의 딸로서 자식 둘 자를 청하였는데, 이에 이제현의 딸이 뽑혀 혜비로 봉하여졌다. 이 때문에 공주가 분하게 생각하여 진수(珍羞)를 진상하지 않고 참소와 고자질이 다투어 일어났는데, 이는 공주가 투기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민왕 말기에 홍륜(洪倫)‧홍관(洪寬)‧한안(韓安) 등 자제위(子弟衛)의 무리들이 제비(諸妃)를 강제로 욕보일 때에 혜비‧정비(定妃)‧신비(愼妃)는 완강히 거절하여 따르지 않았다. 공민왕이 시역(弑逆)을 당하자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아들이 없자, 재상들이 명가의 딸로서 자식 둘 자를 청하였는데, 이에 이제현의 딸이 뽑혀 혜비로 봉하여졌다. 이 때문에 공주가 분하게 생각하여 진수(珍羞)를 진상하지 않고 참소와 고자질이 다투어 일어났는데, 이는 공주가 투기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민왕 말기에 홍륜(洪倫)‧홍관(洪寬)‧한안(韓安) 등 자제위(子弟衛)의 무리들이 제비(諸妃)를 강제로 욕보일 때에 혜비‧정비(定妃)‧신비(愼妃)는 완강히 거절하여 따르지 않았다. 공민왕이 시역(弑逆)을 당하자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김기덕(金基德)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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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