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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규(洪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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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문계(文系)
시호(諡號)광정(匡定)
생년1242(고종 29)
졸년1316(충숙왕 3)
시대고려후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진(洪縉)
5대조홍관(洪灌)
광주김씨(光州金氏)
외조부김연(金練)

[상세내용]

홍규(洪奎)
1242년(고종 29) ∼1316년(충숙왕 3). 고려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초명은 문계(文系).

인종 때 추성보국공신(推誠報國功臣)에 봉해진 홍관(洪灌)의 5세손으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홍진(洪縉)의 아들이며, 부인은 광주김씨(光州金氏)참지정사(參知政事) 김연(金練)의 딸이다.

원종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으며, 매부인 임유무(林惟茂)의 집정기에는 송송례(宋松禮)와 함께 자문역할을 하였다.

1270년(원종 11) 원나라에 있던 왕이 출륙환도를 명하고 귀환할 때 임유무가 왕을 배척하고 항전태세를 갖추자, 왕의 밀령을 받아 송송례 등과 함께 삼별초(三別抄)를 동원하여 권신 임유무를 죽였다. 이어 세자(충렬왕)를 수종하여 원경(元京)에 갔는데 원제(元帝)의 명으로 고려 1품직에 올랐으며, 원의 좌부승선(左副丞宣)의 직을 받았다.

귀국해서는 국정의 문란을 혐오하여 사직하였다가 다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다. 또 사퇴하니 이때 40세가 못 되었다.

뒤에 충렬왕과 공주가 양가(良家)의 여자를 징발하여 원나라에 보낼 때, 딸이 그 대상이 되자 이를 기피한 죄로 해도에 귀양갔다. 결국 두 딸이 모두 원나라에 뽑혀가고 가산이 적몰되었는데, 중찬(中贊) 김방경(金方慶)과 그의 종형 홍자번(洪子蕃) 등이 전일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사실로 면죄를 간청하여 가산이 반환되고 곧 풀려나, 이듬해 첨의시랑찬성사 판전리사사(僉議侍郞贊成事判前理司事)로 치사하였다.

뒤에 중찬을 더하고 이어서 판삼사사 수사도 영경령궁사(判三司事守司徒領景靈宮事)가 되었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지고, 또 첨의정승 익성군 지익성부사(僉議政丞益城君知益城府事)에 올랐다.

1316년 추성진력안정공신 남양부원군 상의 첨의도감사(推誠陳力安定功臣南陽府院君商議僉議都監事)에 이르러 죽었다. 시호는 광정(匡定)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