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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련(趙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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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온중(溫仲)
시호(諡號)충숙(忠肅)
생년?(미상)
졸년1322(충숙왕 2)
시대고려후기
본관평양(平壤)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인규(趙仁規)

[상세내용]

조련(趙璉)
미상∼1322년(충숙왕 2).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온중(溫仲). 자의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를 지낸 조인규(趙仁規)의 아들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인 준(浚)의 할아버지이다.

음서(蔭敍)로 진출하여 1308년(충선왕 즉위)에 평리(評理)가 되고, 이어 동지밀직사사지밀직사사 등을 거쳐 1311년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오르고, 여러 번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충숙왕찬성사가 되어 최고위의 재상반열에 서서 중요한 일을 맡았다.

또한, 원나라로부터 중의대부 고려왕부단사관(中議大夫高麗王府斷事官)의 직임을 받았는데, 이는 조인규가 지녔던 것을 물려받은 셈이며, 따라서 고려에서의 정치적 지위를 굳히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심왕(瀋王) 고(暠)고려 왕위를 넘보는 일로 원나라에 불려가서 국왕인(國王印)을 빼앗기는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충숙왕원나라의 명령에 의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권성사(權省事)가 되어 왕의 직무를 대행한 바 있다.

충숙왕심왕의 싸움이 결말을 보기 전인 1322년(충숙왕 9)에 죽었지만, 동생 연수(延壽)와 함께 심왕의 편을 들어 절개를 잃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趙仁規와 그의 家門(閔賢九, 震檀學報 42‧43, 1976‧1977)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