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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王暠)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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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완택독(完澤禿)
생년?(미상)
졸년1345(충목왕 1)
시대고려후기
본관개성(開城)
활동분야왕실 > 왕자
왕자(王滋)
안비(安妃)
처부송산(松山)

[상세내용]

왕고(王暠)
미상∼1345년(충목왕 1). 고려 충렬왕의 손자. 몽고 이름은 완택독(完澤禿). 개성왕씨(開城王氏).

부친은 충렬왕의 맏아들인 강양공(江陽公) 왕자(王滋)이며, 모친은 안비(安妃)이다. 충선왕은 그의 작은아버지가 된다. 충선왕이 마치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여 궁중에서 길렀으며, 연안군(延安君)에 봉하였다.

1313년(충선왕 5)에 충선왕이 왕위를 충숙왕에게 전위할 때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이로부터 독로화(禿魯花: 質子)로서 원나라에 머물렀다.

1316년(충숙왕 3)에는 충선왕이 가지고 있던 심왕위(瀋王位)를 이어받고 원나라에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봉하여졌으며, 이와 동시에 충선왕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의 형인 양왕(梁王) 송산(松山)의 딸에게 장가들어 원나라의 부마가 되었다.

1320년에 원나라에서 영종(英宗)이 즉위하자 곧 그의 총애를 받아 고려왕위를 엿보게 되었는데, 때마침 고려에서 채홍철(蔡洪哲)권한공(權漢功)채하중(蔡河中)조적(曺頔) 등이 이를 부추겨 ‘심왕옹립운동’이 일어났다.

다음해에 이들의 참소로 충숙왕원나라에 불려가 국왕인(國王印)을 빼앗기고 억류당하였으며, 이로부터 고려에서는 충숙왕을 지지하는 측과 심왕당(瀋王黨)사이에 대립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1323년에 원나라에서 영종이 살해되고 태정제(泰定帝: 晉宗)가 즉위함으로써 충숙왕은 국왕인을 돌려받고 귀국하였으며, 이때까지 심왕을 옹립하려던 사람들이 처벌되면서 심왕옹립운동은 잠잠하여지게 되었다.

이후 원나라에 머물러 있다가 1333년(충숙왕 복위 2) 충숙왕원나라에 갔을 때 행궁(行宮)에서 왕을 알현하고 함께 고려에 돌아왔다.

1339년에 충숙왕이 사망하자 원나라태사(太師) 백안(伯顔)의 후원을 받으면서 조적 등과 모의하여 또다시 고려왕위에 오르려 하였다. 이에 조적 등 심왕당이 충혜왕의 왕궁을 습격하기에 이르렀지만, 크게 패함으로써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고려로 돌아와 다음해에 사망하였고, 심왕위는 손자인 독타불화(篤朶不花)에게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元史
元‧高麗關係の一齣―瀋王に就いて―(丸龜金作, 靑丘學叢 18, 1934)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