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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辛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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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편조(遍照)
자(字)요공(耀空)
호(號)청한거사(淸閑居士)
생년?(미상)
졸년1371(공민왕 20)
시대고려후기
본관영산(靈山)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상세내용]

신돈(辛旽)
미상∼1371년(공민왕 20). 고려 공민왕 때 개혁정치를 담당하였던 승려. 본관은 영산(靈山). 승명은 편조(遍照), 자는 요공(耀空)이며 왕이 내린 법호로 청한거사(淸閑居士)가 있다. 은 집권 후에 정한 속명이다.
1. 가계
아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고 영산에 무덤이 있었다는 것만이 확인될 뿐이며, 모친은 계성현(桂城縣) 옥천사(玉川寺)의 비(婢)였다. 어려서 승려가 되었지만 모계 때문에 신분적으로 천한 위치에 있어 주위의 용납을 받지 못하고 늘 산방(山房)에 거처하였다.
2. 왕사로 국정관여
1358년(공민왕 7)에 왕의 측근인 김원명(金元命)의 소개로 공민왕을 처음 만나게 되어 궁중에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공민왕 자신이 독실하게 불교를 신봉하였고 신돈 또한 총명하여 왕의 중망(重望)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라를 어지럽힐 자는 반드시 이 중놈일 것이다.”라는 비난도 있었고, 심지어 정세운(鄭世雲)은 요승이라 하여 죽이려고까지 하므로 왕이 피신시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를 배척하던 인물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정치의 표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1364년 두타승(頭陀僧)이 되어 공민왕을 내알(來謁)하고 비로소 궁안에 들어와 용사(用事)하게 되었다. 이때 왕으로부터 청한거사라는 호를 받고 사부가 되어 국정을 자문하였는데 왕이 따르지 않는 바가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많은 추종자가 생기게 되었다.

마침내 1365년 5월에 최영(崔瑩)을 비롯하여 이인복(李仁復)이구수(李龜壽) 등을 거세하면서 세력을 쌓았으며, 같은해 7월에는 진평후(眞平侯)에 봉해진 뒤 수정이순논도섭리보세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영도첨의사사사 판중방감찰사사 취산부원군 제조승록사사 겸판서운관사(守正履順論道燮理保世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領都僉議使司事判重房監察司事鷲山府院君提調僧錄司事兼判書雲觀事)에 이르렀다.

그가 이렇게 등용된 배경은 벌족세신(閥族世臣)은 친당(親黨)의 뿌리가 서로 얽혀 있고 신진은 이름을 낚으며 유자(儒者)는 유나(柔懦)하고 강기(剛氣)가 적은 데 비하여 신돈은 도(道)를 얻고 욕심이 적으며 미천하여 친당이 없으므로 큰 일을 맡기어도 소신껏 국정을 살필 수 있을 것이라는 개혁지향적인 공민왕의 판단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그의 등용을 공민왕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저지른 실정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하겠다.

영도첨의사사사가 된 뒤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중국에는 권왕(權王)으로 알려졌고 백관들에게는 영공(令公)으로 불렸다. 인사권을 포함한 광범위한 내외의 권력을 총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을 대신하여 백관들의 조하(朝賀)를 받고 출입할 때는 의위(儀威)가 왕의 승여(乘輿)와 비슷할 정도의 권위를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과 지위는 왕권의 의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을 뿐 그의 독자적 세력기반을 구축했던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신분적 제약과 불확실한 수도과정에 비추어볼 때 불교계에도 지지기반을 가질 수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영향력이 컸던 고승 보우(普愚)로부터는 사승(邪僧)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3. 개혁정치
신돈의 집권기간 동안 이루어진 시책으로는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의 설치와 활동을 통한 개혁적인 정책을 들 수 있다.

1366년 5월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게 하고 스스로 판사(判事)가 되어 부당하게 겸병당한 토지와 강압에 의하여 노비가 된 백성들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권문세가들이 탈점했던 전민(田民)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준 경우가 많아 “성인이 나타났다.”라는 찬양을 받기까지 하였다.

1367년 숭문관(崇文館)옛터에 성균관을 중영(重營)할 때 직접 그 터를 살피고 “문선왕(文宣王: 孔子)은 천하 만세(萬世)의 스승이다.”라고 하면서 문신들이 품질에 따라 포(布)를 내어 추진하는 이 사업에 적극성을 보여 마침내 완성을 보아 유술(儒術)을 중흥시키려는 공민왕의 의욕에 부응하였다. 그리고 그해 『도선비기(道詵祕記)』를 근거로 하여 왕에게 천도할 것을 건의하고 스스로 평양에 가서 상지(相地)까지 하였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4. 신돈의 제거
신돈의 등용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많은 물의가 있었다. 일찍이 이제현(李齊賢)이 신돈의 골상(骨相)은 옛날 흉인(凶人)의 것과 같아 후환을 끼칠 것이라 하여 왕에게 가까이하지 말 것을 요청한 바 있었으며, 1366년에 간관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 등이 탄핵을 하다가 도리어 폄축(貶逐)을 당하기도 하였다.

1367년 10월에는 오인택(吳仁澤)‧경천흥(慶千興)‧김원명 등이 제거하려고 밀의(密議)하다가 발각되어 장류를 당하였으며, 1368년 10월에도 김정(金精)김흥조(金興祖)김제안(金齊顔) 등이 그를 죽일 것을 모의하다가 계획이 누설되어 장류되던 도중에 살해를 당하였다.

한편, 기거하던 기현(奇顯)의 집에서 독립한 1367년부터는 처첩을 거느리고 아이를 낳고 주색에 빠져 비난이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1369년 스스로 5도(道)의 도사심관(都事審官)이 되려고 사심관을 부활시키려다가 좌절되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세력기반을 확립시키려고 시도하였던 일로 보여진다.

1370년 10월, 그동안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공민왕이 친정(親政)할 뜻을 밝혔고, 1371년 7월 마침내 역모를 꾀한다는 혐의로 붙잡혀 수원에 유배되었다가 일당 기현‧이춘부(李春富)이운목(李云牧) 등과 함께 복주(伏誅)되었다.
5. 평가
신돈의 집권은 공민왕 때의 복잡한 정치상황 아래에서 나타났던 특이한 현상이다. 집권기간은 6년 정도에 불과하며, 정치적 지위도 전적으로 왕권의 비호 아래 얻어진 비정상적인 것이었으며 정치가로서의 자질이나 식견도 보잘것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집권기간중에 권문세가의 유력자들을 거세시키면서 전민변정도감을 통하여 개혁적인 시책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성균관을 중영하여 신진문신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하였다고 하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윤소종(尹紹宗)조선의 건국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신진문신세력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공민왕의 개혁정치 전반과 관련하여 각별히 유의할 점이다.

또한, 공민왕을 계승한 우왕과 그의 아들 창왕이 신돈의 자손이라 하여 뒷날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을 내세워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명분 아래 창왕을 내쫓고 공양왕을 추대한 정변과도 간접적인 관련을 가지게 됨으로써 조선의 건국과정을 통하여 그의 집권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祖實錄
辛旽考(姜裕文, 佛敎 6‧7‧9‧10‧11, 1938)
辛旽(閔丙河, 人物韓國史Ⅱ, 1965)
恭愍王(金哲埈, 韓國의 人間像 1, 新丘文化社, 1965)
辛旽의 執權과 그 政治的 性格(閔賢九, 歷史學報 38‧40, 1968)

[집필자]

민현구(閔賢九)

명 : "돈(旽)"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4選豊徳君義右常侍安克仁女為與辛旽共觀之據胡床白若
紀年便攷v4赴省示同列曰妖物誤國不可不去諸郞旡敢應者存吾与樞姻親也謂樞曰兄不當如是樞従之遂与上疏○內外之權悉揔於○倭寇深嶽縣○百官會于辛旽家地大震旽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識者寒心○大始魯國公主影殿于王輪寺之東南輦木
紀年便攷v4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識者寒心
紀年便攷v4車馬填街而宫門寂然識者寒心○大始魯國公主影殿于王輪寺之東南輦木石呼耶聲動天地晝夜不絶牛死者相継于道○髠李龜壽䓁旽髠李龜壽寘于松廣寺金貴于盧山寺朴椿于裂岩寺後二年遣人皆沈于江殺之○幸洛山寺辛旽願剎也○倭
紀年便攷v4白王曰佛放光
紀年便攷v4淑退歸王不忘故恐淑復用誣告殺之
紀年便攷v4死恐被旽讓窃取他人兒寘他所請於旽曰兒有疾移養城外何如旽許之比反一年旽取養于家般若亦未知非其兒也王求嗣指其兒曰願殿下為養子以立後王晲而笑之不荅然猶心許之及流旽王謂近臣曰予嘗至旽家幸侍婢生子母令驚動善護之
紀年便攷v4婢般若有娠厲伴僧能祐使就養於其母家七日而般若還能祐母收以養之未期年其兒死恐被旽讓窃取他人兒寘他所請於曰兒有疾移養城外何如旽許之比反一年旽取養于家般若亦未知非其兒也王求嗣旽指其兒曰願殿下為養子以立後王晲
紀年便攷v4家般若亦未知非其兒也王求嗣旽指其兒曰願殿下為養子以立後王晲而笑之不荅然猶心許之及流旽王謂近臣曰予嘗至家幸侍婢生子母令驚動善護之至是召納乃屬侍中李仁任曰元子在吾旡憂矣牟尼奴時年七歲
紀年便攷v4牟尼奴婢妾般若所生是為禑或云旽納私婢般若有娠厲伴僧能祐使就養於其母家七日而般若還能祐母收以養之未期年其兒死
紀年便攷v4就養於其母家七日而般若還能祐母收以養之未期年其兒死恐被旽讓窃取他人兒寘他所請於旽曰兒有疾移養城外何如許之比反一年旽取養于家般若亦未知非其兒也王求嗣旽指其兒曰願殿下為養子以立後王晲而笑之不荅然猶心許之及
紀年便攷v4般若所生是為禑或云旽納私婢般若有娠厲伴僧能祐使就養於其母家七日而般若還能祐母收以養之未期年其兒死恐被讓窃取他人兒寘他所請於旽曰兒有疾移養城外何如旽許之比反一年旽取養于家般若亦未知非其兒也王求嗣旽指其兒
紀年便攷v4之比反一年旽取養于家般若亦未知非其兒也王求嗣旽指其兒曰願殿下為養子以立後王晲而笑之不荅然猶心許之及流王謂近臣曰予嘗至旽家幸侍婢生子母令驚動善護之至是召納乃屬侍中李仁任曰元子在吾旡憂矣牟尼奴時年七歲
紀年便攷v4○辛旽謀反流于水原誅其黨奇顯䓁○辛旽㐲誅因両司臺諌理部上書乃誅之支觧以循梟首京城時人謂旽為老狐精○誅黨大護軍李伯修流成汝完趙思謙柳濬○召牟尼奴納太后殿牟尼奴旽婢妾般若所生是為禑或云旽納私婢般若有娠厲伴
紀年便攷v4牟尼奴旽婢妾般若所生是為禑或云納私婢般若有娠厲伴僧能祐使就養於其母家七日而般若還能祐母收以養之未期年其兒死恐被旽讓窃取他人兒寘他所
紀年便攷v4日而般若還能祐母收以養之未期年其兒死恐被旽讓窃取他人兒寘他所請於旽曰兒有疾移養城外何如旽許之比反一年取養于家般若亦未知非其兒也王求嗣旽指其兒曰願殿下為養子以立後王晲而笑之不荅然猶心許之及流旽王謂近臣曰
紀年便攷v4得雔世獨立之人以革其因循之弊及見旽以為得道寡慾授以國政而不疑旽旣得志恣行威福主於金蘭家蘭以二䖏女與旽日加崇重封為真平侯又賜守正論道燮理保世㓛臣號領都僉議司事封鷲城府院君居家飮酒食肉恣意聲色及其見王清談
紀年便攷v4密令避之二人旣死乃長髮為頭陁名辛旽始入內用事稱為師傅咨訪國政言無不従士大夫之妻妾以為神僧聼法求福而至輒私焉李仁復韓修李齊賢并請勿近王不聼王思得雔世獨立之人以革其因循之弊及見旽以為得道寡慾授以國政而不疑
紀年便攷v4侍郞李韌備知兇謀乃匿姓名稱為寒林䖏士為書夜投宰相金續命家續命進其書王乃命收捕旽黨奇顯䓁鞫之皆就服遂流于水原尋梟首于京城支觧徇諸道并斬其二歲兒性畏田犬惡射獵且縱滛常殺烏鷄白馬以助陽氣時人謂旽為老狐精
紀年便攷v4夫鄭樞従之遂上疏極言旽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外補百官待旽如王皆會于旽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旽恩讎必復世家大族誅殺殆盡
紀年便攷v4思得雔世獨立之人以革其因循之弊及見旽以為得道寡慾授以國政而不疑旽旣得志恣行威福主於金蘭家蘭以二䖏女與旽日加崇重封為真平侯又賜守正論道燮理保世㓛臣號領都僉議司事封鷲城府院君居家飮酒食肉恣意聲色及其見王清
紀年便攷v4輒私焉李仁復韓修李齊賢并請勿近王不聼王思得雔世獨立之人以革其因循之弊及見旽以為得道寡慾授以國政而不疑旣得志恣行威福主於金蘭家蘭以二䖏女與旽旽日加崇重封為真平侯又賜守正論道燮理保世㓛臣號領都僉議司事封鷲
紀年便攷v4李存吾時年二十五奮不顧身袖疏赴省示同列曰妖物誤國不可不去同僚畏縮無敢應獨左司議大夫鄭樞従之遂上疏極言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
紀年便攷v4樞存吾面責之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外補百官待如王皆會于旽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旽恩讎必復世家大族誅殺殆盡黨與滿朝王亦有不自安之意旽恐王圖已遂謀不軌
紀年便攷v4列曰妖物誤國不可不去同僚畏縮無敢應獨左司議大夫鄭樞従之遂上疏極言旽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外補百官待旽如王皆會于旽家
紀年便攷v4如王皆會于旽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旽恩讎必復世家大族誅殺殆盡黨與滿朝王亦有不自安之意旽恐王圖已遂謀不軌旽門客侍郞李韌備知兇謀乃匿姓名稱為寒林䖏士為書夜投宰相金續命家續命進其書王乃命收捕旽黨奇顯䓁鞫之皆就
紀年便攷v4㓛臣號領都僉議司事封鷲城府院君居家飮酒食肉恣意聲色及其見王清談吃菜李達衷甞於廣座謂旽曰人言公酒色過度不悅右正言李存吾時年二十五奮不顧身袖疏赴省示同列曰妖物誤國不可不去同僚畏縮無敢應獨左司議大夫鄭樞従之
紀年便攷v4之皆就服遂流旽于水原尋梟首于京城支觧徇諸道并斬其二歲兒性畏田犬惡射獵且縱滛常殺烏鷄白馬以助陽氣時人謂為老狐精
紀年便攷v4獄鞫之外補百官待旽如王皆會于旽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旽恩讎必復世家大族誅殺殆盡黨與滿朝王亦有不自安之意恐王圖已遂謀不軌旽旽門客侍郞李韌備知兇謀乃匿姓名稱為寒林䖏士為書夜投宰相金續命家續命進其書王乃命收捕
紀年便攷v4同僚畏縮無敢應獨左司議大夫鄭樞従之遂上疏極言旽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外補百官待旽如王皆會于旽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旽
紀年便攷v4王皆會于旽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旽恩讎必復世家大族誅殺殆盡黨與滿朝王亦有不自安之意旽恐王圖已遂謀不軌旽門客侍郞李韌備知兇謀乃匿姓名稱為寒林䖏士為書夜投宰相金續命家續命進其書王乃命收捕旽黨奇顯䓁鞫之皆就服
紀年便攷v4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外補百官待旽如王皆會于家車馬填街而宫門寂然旽恩讎必復世家大族誅殺殆盡黨與滿朝王亦有不自安之意旽恐王圖已遂謀不軌旽旽門客侍郞
紀年便攷v4恐王圖已遂謀不軌旽旽門客侍郞李韌備知兇謀乃匿姓名稱為寒林䖏士為書夜投宰相金續命家續命進其書王乃命收捕黨奇顯䓁鞫之皆就服遂流旽于水原尋梟首于京城支觧徇諸道并斬其二歲兒性畏田犬惡射獵且縱滛常殺烏鷄白馬以助
紀年便攷v4之妻妾以為神僧聼法求福而至旽輒私焉李仁復韓修李齊賢并請勿近王不聼王思得雔世獨立之人以革其因循之弊及見以為得道寡慾授以國政而不疑旽旣得志恣行威福主於金蘭家蘭以二䖏女與旽旽日加崇重封為真平侯又賜守正論道燮
紀年便攷v4賜守正論道燮理保世㓛臣號領都僉議司事封鷲城府院君居家飮酒食肉恣意聲色及其見王清談吃菜李達衷甞於廣座謂曰人言公酒色過度旽不悅右正言李存吾時年二十五奮不顧身袖疏赴省示同列曰妖物誤國不可不去同僚畏縮無敢應獨
紀年便攷v4居之句曰淑今在瑞州近海若效范蠡乗舟下去則必向燕都謀立德興不如早除以絶後患王旣信其讒且重違旽意乃命杖流遂遣人縊殺于靈光卽㳟愍戊申也年五十三官至僉議賛成事及禍作家人送良馬勸之逃淑曰君父天也天可逃乎且死生有
紀年便攷v4過碧瀾渡詩曰久負江湖約紅塵二十年白鷗如欲笑故故近樓前就戮詩曰未識青雲路江湖四十年南孝温稱其忠清大節及誅王悼淑甚有旨雪其寃謚文僖配享㳟愍廟庭曾孫方善見下
紀年便攷v4大名之下久難居之句曰淑今在瑞州近海若效范蠡乗舟下去則必向燕都謀立德興不如早除以絶後患王旣信其讒且重違意乃命杖流旽遂遣人縊殺于靈光卽㳟愍戊申也年五十三官至僉議賛成事及禍作家人送良馬勸之逃淑曰君父天也天可
紀年便攷v4下忠義有餘遇大事决大疑未甞猶䂊盖於精明仁恕両得之矣旽恐王復用淑䜛於王曰淑之乞退有深意上知之乎王曰何意曰淑以句踐比上以范蠡自比因誦大名之下久難居之句曰淑今在瑞州近海若效范蠡乗舟下去則必向燕都謀立德興不如
紀年便攷v4章辭嚴義奧語多譏諷甞修閔漬編年綱目及烈宣肅三朝實錄王方寵辛旽仁復密啓旽非端人他日必有變請遠之王不聼及誅王歎其先見之明甞惡両弟仁任仁敏之為人曰敗國亡家者必二弟也後果如其言㳟愍甲寅居父憂在京山疾革自度不起
紀年便攷v4守力學善屬文國家辭命多出其手為文章辭嚴義奧語多譏諷甞修閔漬編年綱目及烈宣肅三朝實錄王方寵辛旽仁復密啓非端人他日必有變請遠之王不聼及旽誅王歎其先見之明甞惡両弟仁任仁敏之為人曰敗國亡家者必二弟也後果如其言
紀年便攷v4鄭樞姻親也謂樞曰兄不當如是樞従之遂與同疏極言旽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貶存吾為長沙監務自是退去公州之石灘旽勢益熾憂憤
紀年便攷v4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貶存吾為長沙監務自是退去公州之石灘旽勢益熾憂憤成疾辛亥疾革令左右扶起曰尙熾乎左右曰然還卧曰旽亡吾乃亡返席未安而卒年三十卒之第三月旽誅王思其忠贈大司成子来年纔十歲王手書諌官
紀年便攷v4應者存吾與左司議大夫鄭樞姻親也謂樞曰兄不當如是樞従之遂與同疏極言旽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貶存吾為長沙監務自是退去公
紀年便攷v4赴省示同列曰妖物誤國不可不去諸郞無敢應者存吾與左司議大夫鄭樞姻親也謂樞曰兄不當如是樞従之遂與同疏極言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旽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
紀年便攷v4石灘旽勢益熾憂憤成疾辛亥疾革令左右扶起曰旽尙熾乎左右曰然還卧曰旽亡吾乃亡返席未安而卒年三十卒之第三月誅王思其忠贈大司成子来年纔十歲王手書諌官之子安國来小字下政房授掌車直長
紀年便攷v4是樞従之遂與同疏極言旽罪疏上王大怒命焚之召樞存吾面責之時旽與王并據胡床存吾目旽叱之曰老僧何得無禮如此惶駭不覺下床王愈怒下巡軍獄鞫之貶存吾為長沙監務自是退去公州之石灘旽勢益熾憂憤成疾辛亥疾革令左右扶起曰
紀年便攷v4軍獄鞫之貶存吾為長沙監務自是退去公州之石灘旽勢益熾憂憤成疾辛亥疾革令左右扶起曰旽尙熾乎左右曰然還卧曰亡吾乃亡返席未安而卒年三十卒之第三月旽誅王思其忠贈大司成子来年纔十歲王手書諌官之子安國来小字下政房授
紀年便攷v4龜壽辛旽虐熖日熾必欲殺龜壽及評理金貴密直朴椿䓁髠三人頭寘之山寺旣而遣其黨沉三人子海殺之於是朝臣側目視如狼虎官至賛成事
紀年便攷v4郭儀玄風人每遇俗節備酒饌徃靈山奠辛旽父墳素不相識聞之驚喜召拜正言
紀年便攷v4奇顯旽出禁中寓顯家私於顯妻使主中饋顯與其妻朝夕侍側若老奴婢初顯妻寡居為僧通焉後歸顯及旽主顯家又通焉由是顯聚登庸旽敗顯亦㐲誅
紀年便攷v4奇顯出禁中寓顯家私於顯妻使主中饋顯與其妻朝夕侍側若老奴婢初顯妻寡居旽為僧通焉後歸顯及旽主顯家又通焉由是顯
紀年便攷v4奇顯旽出禁中寓顯家私於顯妻使主中饋顯與其妻朝夕侍側若老奴婢初顯妻寡居旽為僧通焉後歸顯及主顯家又通焉由是顯聚登庸旽敗顯亦㐲誅
紀年便攷v4奇顯
紀年便攷v5于貶所官至侍中封清原府院君辛昌遣官祭其墓曰卿能內誅奇轍外殲紅賊德興之亂與崔瑩奮忠擊走以存社稷終不一進門乃被其讒忠清節義足以範三韓而聳萬世謚貞烈八世孫暹見下子儀兵馬節度使我 朝選清白吏
紀年便攷v5清州又流復興酒徒薛師德等數人時辛旽用事復興與同志密議曰道詵記所謂非俗非僧亂政亡國者必此人宜白上早除之并流南裔復興尋卒于貶所官至侍中封清原府院君辛昌遣官祭其墓曰卿能內誅奇轍外殲紅賊德興之亂與崔瑩奮忠擊走
紀年便攷v5肅朝魁科剛直不撓有識鑑恭愍以爲名儒擢爲密直提學時辛旽飮酒食肉恣意聲色及其見王則清談齕菜菓達衷於廣㘴謂曰人言公酒色過度旽不悅罷達衷密直提學甞爲東北面都巡問使及還桓祖餞于野太祖立桓祖後桓祖行酒達衷立飮太祖
紀年便攷v5識鑑恭愍以爲名儒擢爲密直提學時辛旽飮酒食肉恣意聲色及其見王則清談齕菜菓達衷於廣㘴謂旽曰人言公酒色過度不悅罷達衷密直提學甞爲東北面都巡問使及還桓祖餞于野太祖立桓祖後桓祖行酒達衷立飮太祖行酒乃跪飮 桓祖恠
紀年便攷v5尹桓秀孫賛成事謚忠義吉甫子美風儀好施與歴事五朝三爲首相甞侍恭愍宴桓行酒以飮餘授桓桓飮之無愧色値禑時位極人臣曾不能諌禑以妖夢不經之說獻諂家鉅冨告歸㓒原歲大饑人相食㪚家財以賑
紀年便攷v5命爭之益力王怒甚柳淑進曰求直言而罪言者可乎王怒少解旽門客侍郞李韌書投旽不䡄之謀於續命家續命進其書乃正罪禑母般若夜入太后宫啼呼曰我實生主上何母韓氏耶太后黜之仁任雜治之續命曰天下未辨其父者容或有之未辨其母
紀年便攷v5求言續命以監察大夫與獻納黃瑾上䟽極陳時獘王召詰之續命爭之益力王怒甚柳淑進曰求直言而罪言者可乎王怒少解門客侍郞李韌書投旽不䡄之謀於續命家續命進其書乃正旽罪禑母般若夜入太后宫啼呼曰我實生主上何母韓氏耶太后
紀年便攷v5與獻納黃瑾上䟽極陳時獘王召詰之續命爭之益力王怒甚柳淑進曰求直言而罪言者可乎王怒少解旽門客侍郞李韌書投不䡄之謀於續命家續命進其書乃正旽罪禑母般若夜入太后宫啼呼曰我實生主上何母韓氏耶太后黜之仁任雜治之續命
紀年便攷v5脩從之由是名重一時恭愍召復置政房辛肫得幸其跡甚祕脩密啓曰旽非正人恐致亂王方惑旽拜脩禮儀判書盖䟽之也及敗王曰脩有先見之明官至判厚德府事右文大提學封清城君辛禑甲子卒謚文敬子尙質尙敬見下
紀年便攷v5金石之刻多傳焉忠定王命爲政房祕闍赤及遜于江華脩從之由是名重一時恭愍召復置政房辛肫得幸其跡甚祕脩密啓曰非正人恐致亂王方惑旽拜脩禮儀判書盖䟽之也及旽敗王曰脩有先見之明官至判厚德府事右文大提學封清城君辛禑甲
紀年便攷v5命爲政房祕闍赤及遜于江華脩從之由是名重一時恭愍召復置政房辛肫得幸其跡甚祕脩密啓曰旽非正人恐致亂王方惑拜脩禮儀判書盖䟽之也及旽敗王曰脩有先見之明官至判厚德府事右文大提學封清城君辛禑甲子卒謚文敬子尙質尙敬
紀年便攷v5文鉉佯若不得已而言曰父兄談公不德曰必將亡國予適聞之故恐泄此言也旽信之譛達祥必欲殺之恭愍重違旽意杖流之遂擅殺達祥文鉉遂爲旽門客及旽誅臺官請正文鉉弑父之罪王不允臺官固請文鉉逃辛禑時杖流全義因言官言遣人縊殺
紀年便攷v5之且誘且脅文鉉佯若不得已而言曰父兄談公不德曰必將亡國予適聞之故恐泄此言也旽信之譛達祥必欲殺之恭愍重違意杖流之旽遂擅殺達祥文鉉遂爲旽門客及旽誅臺官請正文鉉弑父之罪王不允臺官固請文鉉逃辛禑時杖流全義因言官
紀年便攷v5金文鉉登第爲成均祭酒恣行滛悖且奸其兄之妾其父密直事達祥禁之不得恐爲法司所按治所謂曰文鉉不肖請置于外旽問其罪達祥不忍斥言但曰狂惑文鉉怨恨自言于旽曰文鉉不幸爲父所疾願公不置死地旽曰何疾
紀年便攷v5不德曰必將亡國予適聞之故恐泄此言也旽信之譛達祥必欲殺之恭愍重違旽意杖流之旽遂擅殺達祥文鉉遂爲旽門客及誅臺官請正文鉉弑父之罪王不允臺官固請文鉉逃辛禑時杖流全義因言官言遣人縊殺之
紀年便攷v5金文鉉登第爲成均祭酒恣行滛悖且奸其兄之妾其父密直事達祥禁之不得恐爲法司所按治所謂旽曰文鉉不肖請置于外問其罪達祥不忍斥言但曰狂惑文鉉怨恨自言于旽曰文鉉不幸爲父所疾願公不置死地旽曰何疾汝耶曰我有何罪第畏吾
紀年便攷v5父密直事達祥禁之不得恐爲法司所按治所謂旽曰文鉉不肖請置于外旽問其罪達祥不忍斥言但曰狂惑文鉉怨恨自言于曰文鉉不幸爲父所疾願公不置死地旽曰何疾汝耶曰我有何罪第畏吾口耳曰何畏也文鉉若不忍言者旽疑之且誘且脅文
紀年便攷v5治所謂旽曰文鉉不肖請置于外旽問其罪達祥不忍斥言但曰狂惑文鉉怨恨自言于旽曰文鉉不幸爲父所疾願公不置死地曰何疾汝耶曰我有何罪第畏吾口耳曰何畏也文鉉若不忍言者旽疑之且誘且脅文鉉佯若不得已而言曰父兄談公不德曰
紀年便攷v5父兄談公不德曰必將亡國予適聞之故恐泄此言也旽信之譛達祥必欲殺之恭愍重違旽意杖流之旽遂擅殺達祥文鉉遂爲門客及旽誅臺官請正文鉉弑父之罪王不允臺官固請文鉉逃辛禑時杖流全義因言官言遣人縊殺之
紀年便攷v5耳曰何畏也文鉉若不忍言者旽疑之且誘且脅文鉉佯若不得已而言曰父兄談公不德曰必將亡國予適聞之故恐泄此言也信之譛達祥必欲殺之恭愍重違旽意杖流之旽遂擅殺達祥文鉉遂爲旽門客及旽誅臺官請正文鉉弑父之罪王不允臺官固
紀年便攷v5文鉉怨恨自言于旽曰文鉉不幸爲父所疾願公不置死地旽曰何疾汝耶曰我有何罪第畏吾口耳曰何畏也文鉉若不忍言者疑之且誘且脅文鉉佯若不得已而言曰父兄談公不德曰必將亡國予適聞之故恐泄此言也旽信之譛達祥必欲殺之恭愍重
紀年便攷v5李韌始爲旽門客備知謀不䡄隂籍記之乃匿姓名稱爲寒林䖏士爲書夜投宰相金續命家即微服亡去後官至知門下府事辛禑辛酉卒謚翼平
紀年便攷v5李韌始爲門客備知旽謀不䡄隂籍記之乃匿姓名稱爲寒林䖏士爲書夜投宰相金續命家即微服亡去後官至知門下府事辛禑辛酉卒
紀年便攷v5有行子字浩然號遁村又墨石初名元齡忠穆王朝登科性抗直以文章氣節著名當世甞忤辛旽旽欲殺之竊負其父逃竄永州誅乃還退居驪州躬耕讀書李穡鄭夢周等敬友之官止判典校寺事子之直之剛之柔見下
紀年便攷v5廣州人進士唐爲本州吏謹勑有行子字浩然號遁村又墨石初名元齡忠穆王朝登科性抗直以文章氣節著名當世甞忤辛旽欲殺之竊負其父逃竄永州旽誅乃還退居驪州躬耕讀書李穡鄭夢周等敬友之官止判典校寺事子之直之剛之柔見下
紀年便攷v5曺希直昌寧人爲正言與李存吾䟽斥奸竄珍島及我 朝有勸進自比夷齊終不出作狎鷗亭於嘉興水邉以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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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