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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량(朴景亮)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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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박선(朴瑄)
일명(一名)박선(朴宣)
생년?(미상)
졸년1320(충숙왕 7)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박녹대(朴祿大)

[상세내용]

박경량(朴景亮)
미상∼1320년(충숙왕 7). 고려 후기의 문신. 초명은 선(瑄, 宣), 초군노(抄軍奴)인 박녹대(朴祿大)의 아들이며, 충선왕비(忠宣王妃)조비(趙妃)의 매서(妹壻)이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1303년(충렬왕 29) 앞서 충선왕이 모함을 받았을 때 이를 저지한 공으로 특별히 등용되었고, 이때 일가친척까지 모두 양민이 되었다.

한국공주(韓國公主: 薊國大長公主)조비를 질투, 원나라에 모함함으로써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조비를 징계할 때 함께 원나라에 잡혀가고 재산도 몰수되었다. 뒤에 원나라에서 돌아와 군부판서(軍簿判書)밀직부사가 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첨의평리(僉議評理)로서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

이때 충선왕원나라에 있으면서 전지(傳旨)로 정치를 하였는데, 당시 연경(燕京)에 있던 김심(金深)이사온(李思溫) 등이 왕이 오랫동안 원나라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박경량최성지(崔誠之)권한공(權漢功) 등의 심복 때문이라고 휘정원(徽政院)에 무고하여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충선왕부춘군(富春君)에 봉하여졌고, 충숙왕 때 다시 흥례군(興禮君)에 봉하여졌다.

1320년(충숙왕 7) 상왕(上王: 충선왕)이 강남(江南)에 귀양가게 되자 수안군(遂安君) 이연송(李連松) 등과 함께 시종하였다. 일행이 금산사(金山寺)에 이르렀을 때 항상 충선왕을 모함하던 빠이앤투구스(伯顔禿古思)의 간계로 뒤쫓아온 원제의 사자에 의하여 왕이 다시 소환되었다.

이때 빠이앤투구스의 흉계로 충선왕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예측하고 시종하던 대부분의 신하가 도망쳐버리자 이에 실망하여 이연송과 함께 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