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관(金管)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AE40AD00FFFFB1250X0
일명(一名)김관(金錧)
자(字)희범(希範)
호(號)정성(靖醒)
시호(諡號)문정(文貞)
생년1250(고종 37)
졸년1345(충목왕 1)
시대고려후기
본관김해(金海)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관(金管)
1250년(고종 37)∼1345년(충목왕 1). 고려 후기 문신‧유학자. 자는 희범(希範)이고, 호는 정성(靖醒)이며, 다른 이름은 김관(金錧)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부친은 김용직(金龍直)이다.

1266년(원종 7)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교서랑(校書郞)과 직한림원(直翰林院)에 올랐다. 안향(安珦)과 학문을 논하는 등 친분이 돈독하였다.

고려 충선왕은 만승회(萬僧會)를 좋아하였으나 이에 반대하며 불교를 배척하였다. 이 일로 왕이 미워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고 왕이 다시 회유하면서 만승회를 없앴다.

1269년(원종 10) 원종을 폐하려 하는 무리 임연(林衍)‧임유무(林惟茂)와 맞서 싸웠고, 송송례(宋松禮)‧홍문사(洪文斯)와 함께 원종을 지켰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三別抄)의 난(亂)이 일어났을 때, 안향이 강화(江華) 적진(敵陣)에 억류되어 있자 지혜를 발휘하여 안향을 구출하여 왕의 칭찬을 듣고 상도 받았다.

1277년(충렬왕 3) 판도좌랑(版圖佐郞)이 되었고, 감찰어사(監察御使)‧국자사업(國子司業)에 올라 나라에 큰 힘을 보태었다. 1289년(충렬왕 15) 안향과 함께 충선왕을 호위하며 연경(燕京)에 갔다가 처음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는 안향과 함께 손으로 기록하여 고려로 돌아왔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주자학이 최초로 전해진 배경이다.

1290년(충렬왕 16) 밀직사사(密直司事)에 자리에 올랐으며, 1344년(충혜왕 복 5) 중국 악양(岳陽)에서 죽은 충혜왕의 시신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인질이 되어 충혜왕의 시신을 고려에서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하였다. 원나라에서는 충성에 감동하여 충혜왕의 시신과 함께 고려로 귀국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1345년(충목왕 1) 연로한 나이로 판도판서(版圖判書)가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슬하에 아들 김문숙(金文淑)과 손자 김항(金抗)이 있다.

[참고문헌]

『호남인물 기초자료』(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단)

[집필자]

박수진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