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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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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전기
활동분야왕실 > 비빈
왕규(王規)

[상세내용]

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의 제15비.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으로 대광(大匡) 왕규(王規)의 딸이다.

왕규는 두 딸을 태조에게, 한 딸은 혜종에게 혼인시켜 왕실과 삼중혼인을 하였다. 태조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온 지방호족 및 신라 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그런데 왕규는 학문적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인물인 듯하다. 중국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고, 태조의 유언을 한문으로 받아 적기도 하는 등 태조의 측근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 태조 제16비 소광주원부인 소생)을 왕위에 추대하기 위하여 혜종을 시해하고자 하기도 하였고, 혜종이 죽은 뒤에는 태조의 셋째 아들 정종과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반역을 꾀하였다는 죄명으로 처형되었다.

그 와중에서 왕규의 일당 수백명이 같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규의 딸인 광주원부인이 무사하였을지는 의문이다. 살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역자의 딸은 왕실에서 축출되는 예가 많으므로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高麗惠宗期 王位繼承亂의 新解釋(姜喜雄, 韓國學報 7, 1977)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