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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부인(禮和夫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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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전기
활동분야왕실 > 비빈
왕유(王柔)

[상세내용]

예화부인(禮和夫人)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의 제18비. 춘주(春州:지금의 春川)사람이며, 대광(大匡) 왕유(王柔)의 딸이다.

왕유는 원래 박씨였으나 태조로부터 왕씨 성을 받았으며, 이름은 유(儒)로도 쓰였다. 왕유는 성격이 곧고 유학에 능통하여 궁예(弓裔)정권하에서 동궁기실(東宮記室)이 되었으나 정치가 어지러움을 보고 출가하여 산곡간에 숨었다가, 태조의 즉위 소식을 듣고 내려오니 태조가 예로써 대접하고 행정업무를 맡아보게 하였다.

태조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온 지방호족 및 신라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왕유의 딸이 태조의 왕비가 된 것은 바로 왕유의 문필가로서의 활동이 태조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출신지 춘주개경에서 강원도로 가는 교통로의 요충으로 태백산 이서의 강원도 일대를 장악할 수 있는 요지에 해당한다.

그리고 궁예가 세웠던 태봉(泰封)의 수도가 철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철원과 근접하면서도 이 지역과 대결할 수 있는 지방세력과의 제휴가 필수적일 것이며, 그럴 때 춘주는 이러한 여러 목적에 합당한 지역으로서의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羅末麗初 地方出身 文士層과 그 役割(全基雄, 釜山史學 18, 1990)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