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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복(車敬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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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37
졸년2006
시대대한민국
활동분야체육인

[상세내용]

차경복(車敬福)
1937년 1월 10일~2006년 10월 31일. 현대 체육인.

부인은 전순주이다.

중동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기업은행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였고, 1964년 하계올림픽에 참가하였다. 1967년 경희대학교 코치로 재직하면서 축구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69년에 기업은행의 코치가 되었고, 1973년에는 감독이 되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 축구 결승의 부심을 맡아 심판으로도 활동하였다.

1984년 인천대학교 축구단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1985년 8월 일본 고베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대회 심판으로 활약하며 ‘그라운드의 포청천’으로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이후 1985년 9월부터 1993년까지 경희대학교 축구단의 감독을 지냈다. 1994년 11월 전북다이노스 창단감독으로 부임하여 K리그에 데뷔하였으며 1997년까지 활동하였다. 1998년 9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7년 동안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으로 맹활약하며,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성남 일화의 리그 3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4년 12월 1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강팀 알 이티하드와의 홈경기에서 0:5로 대패한 뒤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은퇴한 이후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공동회장으로 활동하였고,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심판위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2004년부터 예원예술대 스포츠레저학과 객원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축구계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2001년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으며, 3시즌 연속 우승을 이끌어 2003년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 2010년에 아시아축구연맹 황금공로상이 추서되었다.

묘소는 벽제 승화원이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차종석이다.

[참고문헌]


[집필자]

차호연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