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창훈(李昌薰)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CC3DD6C8B1935X0
생년1935
졸년2004
시대대한민국
본관경산(京山)
활동분야체육인

[상세내용]

이창훈(李昌薰)
1935년~2004년 1월 13일. 현대 체육인.

본관은 경산(京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성주(星州)이다.

부친은 이학금이고, 모친은 송화순이다. 스승은 마라톤 선수 손기정(孫基禎)이고, 부인은 손기정(孫基禎)의 딸 손문영(孫文英)이다. 슬하에 3남, 이준석(李埈碩)‧이준승(李埈承)‧이준호(李埈昊)를 두었다.

선남동부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육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대구영남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이후 손기정(孫基禎)이 다녔던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중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경상북도에서 장거리 대표로 도내의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전국대회에서도 중거리 이상의 종목을 석권하다시피 하였다. 1955년 6월 11일부터 12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치러진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파견 마라톤 예선전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여 2위에 입상하였다. 그리하여 1956년 제16회 멜버른 올림픽에 한국대표선수로 출전하였고, 경기 막판에 일본 선수를 앞지르고 2시간 28분 45초의 기록으로 4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1958년에 개최된 제3회 도쿄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종목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또한 1959년 한국일보와 대한육상경기연맹에서 주최한 9‧28 서울 수복기념 제1회 국제 마라톤 대회(서울~인천)에서는 2시간24분7초의 한국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하였다.

1965년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1977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를 지냈고, 마라톤 강화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국 육상 발전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고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워준 체육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차호연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