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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농선(韓弄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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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한귀례(韓貴禮)
생년1934
졸년2002
시대대한민국
활동분야예능인
한성기(韓成基)

[상세내용]

한농선(韓弄仙)
1934년 1월 24일~2002년 4월 8일. 현대 예능인. 본명은 한귀례(韓貴禮)이다. 본적은 서울시 성동구(城東區)이고, 출신지는 전라남도 목포(木浦)이며, 출생지는 일본 도쿄[東京]이다.

부친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성기(韓成基)이다.

부친이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942년 무렵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이 극심해지자 전라남도 해남(海南)에 있던 외가로 이사하였으며, 1945년에 목포로 옮겨왔다.

여덟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부친에게서 가야금산조와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1946년부터 최막동 명창 밑에서 소리를 배우다가 1948년에 「심청가(沈淸歌)」를 전수받았고, 양상식 명창에게서 약 2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부친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명창 강장원(姜章沅)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면서 1953년에 「수궁가(水宮歌)」를 전수받았고, 1950년에는 여류 명창 박초월(朴初月)에게서 「진국명산(鎭國名山)」‧「강상풍월(江上風月)」‧「수궁가」를 배웠다. 1952년에 박동진(朴東鎭) 명창으로부터 「춘향가(春香歌)」를, 그리고 다음 해에 여류 명창 박록주(朴綠珠)로부터 「흥보가(興甫歌)」‧「홍문연가(鴻門宴歌)」‧「편시춘(片時春)」‧「운담풍경(雲淡風輕)」‧「백발가(白髮歌)」‧「죽장망혜(竹杖芒鞋)」를 전수받았다.

그 뒤 1954년에 국극사(國劇社)에 입단하여 소리와 연기를 해오다가 실력의 미진함을 느껴 1957년에 김연수 명창 밑에서 「수궁가」와 「심청가」를 연마하였다. 그러다가 1958년에 임춘앵 여성국악동지사에 들어갔는데, 공연이 판소리의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느껴 그만두었고, 이후 재차 박록주 명창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수궁가」를 전수받았다.

여러 명창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면서 방송과 공연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중앙국립창극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판소리보존연구회 부이사장 및 판소리 강사로 자리하였고, 1983년부터 1985년까지 국악예술학교에서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1985년에는 한농선판소리연구소를 운영하였다. 이후 중앙대학교와 전남대학교에서 판소리 강사로 재직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이 외에도 영화 「홍살문」‧「한」‧「월하의 공동묘지」 등에 출연하였고, 1960년대의 연속극 주제가 「공주며느리」‧「후취댁」을 창으로 불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기로 즐겨 부르던 소리는 박록주 명창에서 배운 단가 「백발가」‧「흥보가」, 조상현 문하에서 배운 「춘향가」 중 「사랑가」와 「심청가」 중 「뺑덕이네 도망가는데」였고, 특히 「흥보가」에 능통하여 2002년 2월에 중요무형문화제 제5호 판소리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주연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