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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성(獨孤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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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전원윤(全元潤)
생년1929
졸년2004
시대대한민국
활동분야영화인

[상세내용]

독고성(獨孤聲)
1929년 4월 29일~2004년 4월 10일. 현대 영화인. 본명은 전원윤(全元潤)이다. 출신지는 강원도 강릉(江陵)이다.

부인은 박길자이다.

1949년 극단 ‘신협’에 입단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1950년에 전국 신인 남녀가수 콩쿨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하여 고려레코드회사 전속가수로 자리하였다. 1955년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격퇴」로 영화계에 데뷔한 뒤 「목포의 눈물」(1958)‧「72호의 죄수」(1959)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 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65)에서 첫 주연을 맡았는데, 당시 아세아극장에서 약 7만 2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일약 스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 「7인의 난폭자」(1966)‧「풍운의 임란야화」(1968)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개성 넘치는 악역을 연기해 액션스타 1세대의 대표적인 악역 전문배우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눈물 젖은 부산항」(1970)‧「울지 않으리」(1974)‧「호국팔만대장경」 외 총 520여 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악역배우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인협회이사를 25년간 역임하였고, 한국참전예술인협회 상임부회장‧세계평화스마일운동 총본부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영화계의 원로로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종상 특별상(1979)‧영화인 유공상(1996) 등을 받았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영화배우 독고영재(獨孤永宰: 본명 전영재(全永宰))가 아들이며, 손자 독고준(獨孤俊: 본명 전성우(全成宇)) 또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2004. 4. 11)

[집필자]

이지은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