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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완순(張完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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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28
졸년1949
시대대한민국
본관인동(仁同)
활동분야군인

[상세내용]

장완순(張完淳)
1928년∼1949년 6월 23일. 현대 군인.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출신지는 경기도 가평군(加平郡)이다.

경기도 가평군 복장포(福長浦) 국민학교를 졸업하였고,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보병 제1사단 13연대 2대대 5중대에서 소총수로 복무하였다.

1949년 5월 북한군이 남침(南侵)에 앞서 지형적으로 취약한 서해안 황해도 옹진지구(甕津地區)에 대대적인 공세를 펼쳐 옹진반도(甕津半島)의 요충지인 ‘까치봉’을 빼앗았다. 국군이 여러 차례 탈환을 시도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1949년 6월 23일 2대대 5중대에 소속되어 ‘까치봉 탈환’의 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까치봉 탈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까치봉 후방 ‘278고지’에 구축된 북한군의 박격포진지가 ‘까치봉 수호’에 위험요소로 지목되어, 결사대 이끌고 북한의 박격포진지를 공격하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이에 같은 해 6월 23일 새벽에 5명의 결사대원과 함께 적진(敵陣)으로 잠입하였고, 수류탄으로 북한군 박격포진지와 기관총 진지를 기습 공격하여 파괴하고 순국하였다. 불의의 기습에 당황한 북한군은 진지를 포기하고 퇴각하였으며, 박격포진지에 대한 공격 시기를 엿보던 국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총공격을 감행하여 북한군 200명을 사살하고 기관총 등 총기 35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공으로 육군 중사로 1계급 특진되었고, 무성을지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