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류경채(柳景埰)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958ACBDCC44B1920X0
생년1920
졸년1995
시대항일기
본관문화(文化)
활동분야화가

[상세내용]

류경채(柳景埰)
1920년 10월 5일~1995년 12월 29일. 현대 화가.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출신지는 황해도 해주시(海州市)이다.

1941년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녹음사화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 조선미술대전(선전)에 「선」으로 입선하여 미술계에 등단하였다. 같은 해 제19회 선전에 입선하였고, 1949년부터 1955년까지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4회에 걸쳐 특선하였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 자리하며 제자를 키웠다.

1956년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추천작가로 작품을 출품하였다. 1958년 미국 뉴욕에서 한국 현대미술 초대전에 초청받아 작품을 전시하였고, 1959년에는 국전 초대작가로서 작품을 출품하였다. 1960년에는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미국 아시아협회에서 주관하는 동남아 순회전에 참여하였다.

1961년부터 1985년까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자리하면서 교수로서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1965년 제8회 도쿄 비엔날레 국제전에 작품이 전시되었고, 1966년 뉴욕 Macy화랑 초청으로 극동현대미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1970년부터는 한국창작미술협회 회장을 지냈고, 1971년 한국미술대상전에 작품을 전시하였다. 1972년 미술협회 고문을 지냈다.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 서양화 부문 회원으로 등록되었다.

1980년 국전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81년 한국미술 81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1984년 제10대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을 지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축전 국제현대회화전을 열었다.

1992년 한국 근대미술 명풍전을 호암 갤러리에서 개최하였고, 1997년에는 한국 근대미술: 유화-근대를 보는 눈에 작품을 출품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였다.

그의 작품은 시대에 따라 그 경향성이 변하였다. 1950년대에는 구상적인 특징을 보여주었으나, 1980년에 이르러서는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추상을 지향하였다. 또한 그는 30년간 창작미술협회를 이끌면서 미술계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였고, 유망한 젊은 작가들에게 창작의욕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공로로 1949년 제1회 국전 대통령상, 1977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5년에는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동아일보(2005.10.25), 국민일보(2002.09.15)

[집필자]

도태수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