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한상기(韓相基)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D55CC0C1AE30B1917X0
생년1917
졸년2004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영화음악 작곡가

[상세내용]

한상기(韓相基)
1917년 11월 2일~2004년 8월 22일. 현대 영화음악 작곡가. 출생지는 서울특별시이다.

부인은 안이옥(安伊玉)이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음악에 뜻을 두어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그 곳에서 동경(東京)고등음악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한 뒤 1941년부터 대중가요를 작곡하였는데, 초기에는 콜럼비아레코드에 소속되어 활동하면서 친일가요 작곡에도 참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2009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民族問題硏究所) 친일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 수록 예정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이후 이안드레의 탱고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연주자 백해제와 첼로 연주자 전봉초, 아코디언 연주자 황병열‧김호길 등과 함께 연주 활동을 하였다. 1944년 무렵에는 약초(若草)가극단에서 무대음악을 담당하였고,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희망악극단‧부길부길쇼‧라미라(羅美羅)가극단 등 대체로 공연단체를 통해 음악활동을 하였다. 1940년대 최고의 공연단체로 명성을 떨쳤던 조선악극단의 15주년 기념 공연에서 음악극 「청사초롱」(1947)의 음악을 도맡아 작곡하기도 하였다.

공연단체 활동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1949년에 새로 창설된 해병대(海兵隊) 군악대로 입대하였고, 이후 소령 계급까지 진급하면서 군악대장직으로 자리하였다. 1952년에는 해군 관현악단을 창설하였고, 1955년에 해군 중령으로 예편함과 동시에 김기영(金綺泳) 감독의 작품 「주검의 상자」(1955)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이듬해 「봉선화」(1956)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하였고, 1956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곡집 「박꽃」을 펴냈다. 이후 150여 편의 영화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 하였는데, 특히 김기영프로덕션 멤버로 활동하면서 김 감독의 영화 「아리랑」(1954)‧「초설」(1958)‧「하녀」(1960)‧「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고려장」(1963)‧「화녀」(1971)‧「충녀」(1972)‧「화녀 ’82」(1982)‧「육식동물」(1984) 등을 비롯하여 김 감독의 유작이자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죽어도 좋은 경험(천사여 악녀가 되라)」(1995)을 함께 작업하는 등 김 감독 영화의 음악을 도맡아 작곡하였다. 이외에도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3)‧「순교자」(1965)‧「막차로 온 손님들」(1967)‧「불꽃」(1975)‧「장마」(1979) 등과 정진우(鄭鎭宇) 감독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976) 등의 작품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였고, 유현목‧정진우‧김기영 감독이 함께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여(女)‧여(女)‧여(女)」)」(1968)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순교자」로 1966년 제5회, 「석화촌」으로 1972년 제11회,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로 1980년 제17회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받았고, 부일영화상‧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2회에 걸쳐 음악상을 거머쥐는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슬하에 한진국(韓鎭國)‧한승국(韓勝)‧한용국(韓龍國) 등 3남 2녀를 두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주연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