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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호(張敬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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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대원(大圓)
생년1899(광무 3)
졸년1976
시대항일기
본관인동(仁同)
활동분야경제 > 실업가
윤식(允植)
문염이(文念伊)
추명순(秋命順)
출생지경상남도
출생지동래군

[상세내용]

장경호(張敬浩)
1899년∼1976년. 실업가.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대원(大圓). 경상남도 동래군 출생. 아버지 윤식(允植)과 어머니 문염이(文念伊) 사이의 4남 중 3남이다.

8세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통도사(通度寺)를 찾게 되면서 평생 동안 불심(佛心)을 가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

15세 때 당시 관습대로 추명순(秋命順)과 결혼하였고, 상준(相俊)상문(相文)상태(相泰)상철(相哲) 등 6남5녀를 두었다.

14세 되던 해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 19세 되던 해 졸업하였다.

이때가 3‧1운동의 노도가 전국을 휩쓸던 때라 의기와 젊은 혈기로 3‧1운동에 합류하였다. 일본경찰의 수사망을 피하여 도일하였다가 일본유학을 포기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이때 민력(民力)은 곧 국력이며, 애국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민력을 키워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나라가 부강하여야 자주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실업계에 투신할 것을 결심한다.

1920년 부산 초량동 부산중앙시장에 대궁양행을 열고 가마니 매매업을 하였다.

그뒤 1935년 부산 광복동에 남선물산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을 확장하여 나갔다. 남선물산은 가마니공장 외에도 수산물 전국도매업과 미곡사업, 정미소 경영, 그리고 양철로 석유깡통을 만드는 제조업에도 착수하였는데 크게 번창하였다.

광복 후 재일동포가 하던 신선기를 인수, 1949년 조선선재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제정‧제선업체로 철강업계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1954년 7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주식회사를 창업하였다.

1963년 부산직할시 동호동 갯벌 21만평을 매립, 부산공장에 현대식 압연시설을 설치, 본격적인 제강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철근생산 전문업체로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1967년 철강재 수출입 창구이자 주물‧철골생산 메이커인 대원사(大圓社)를 설립하고, 1968년 철골 시공업체이자 환경오염방지업체인 동국건설(東國建設)을 설립하였으며, 1971년에는 부산신철(釜山伸鐵)을 설립하였다.

1979년에는 특수강, 주물단조 및 기계장치업에의 중공업 진출을 위하여 1961년에 설립한 부산제철소를 동국중기공업(東國重機工業)으로 확대, 설립하였다.

또한 1973년에 중앙투자금융(中央投資金融)을 설립하였고, 1985년에는 국제그룹 해체에 따라 냉연강판 메이커인 연합철강공업주식회사(聯合鐵鋼工業株式會社)와 농기계 메이커인 국제종합기계주식회사(國際綜合機械株式會社)를 인수하여 14개 계열기업군을 거느리는 그룹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불교의 대중화‧현대화‧생활화를 위하여 1970년에 장학재단 대원정사(大圓精舍)를 설립, 1973년 5월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에 대원불교회관을 건립하였으며, 불교방송과 불교병원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1975년 7월 개인소유 30억원의 전재산을 호국불교 중흥사업을 위하여 헌납, 우리나라 불교중흥에 큰 자취를 남겼다.

[참고문헌]


[집필자]

조경식(趙京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