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張駉)
[상세내용]
장경(張駉)
1920년 6월 27일~1979년 9월 21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사천(三千)이다.
삼천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대 말 부산중학조선인회(釜山中學朝鮮人會)에 가입하여 민족사상을 기른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 도쿄[東京]의 주오대학[中央大學] 제1예과 제2학년에 편입하여 다니면서 조선의 독립만이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1939년 7월 경 고담룡(高湛龍)‧김운봉(金雲鳳) 등의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1940년 6월에 회합하여 고문(高文)그룹이라고 이름 짓고, 한민족의 단결심 양성과 자력 함양, 그리고 미국을 통한 독립을 도모하기 위한 계획을 모색하는 등 1942년까지 수 십 차례 독립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하였고,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2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로부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삼천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대 말 부산중학조선인회(釜山中學朝鮮人會)에 가입하여 민족사상을 기른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 도쿄[東京]의 주오대학[中央大學] 제1예과 제2학년에 편입하여 다니면서 조선의 독립만이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1939년 7월 경 고담룡(高湛龍)‧김운봉(金雲鳳) 등의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1940년 6월에 회합하여 고문(高文)그룹이라고 이름 짓고, 한민족의 단결심 양성과 자력 함양, 그리고 미국을 통한 독립을 도모하기 위한 계획을 모색하는 등 1942년까지 수 십 차례 독립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하였고,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2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로부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공훈전자사료관
[집필자]
박근령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