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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성(韓志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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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13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군인 > 군인

[상세내용]

한지성(韓志成)
1913년∼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군‧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이다.

중국에서 중앙정치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 창립에도 동참하였으며, 조선청년전위동맹 조직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39년 말 조선의용대 정치조 소속 대원이 되어 정치사업에 종사하였다.

1940년 5월 조선의용대 기관지인 『조선의용대통신』에 조선의용대의 화북(華北)진출을 요구하는 글을 실었다.

1941년 여름 조선의용대가 항일유격근거지인 화북 팔로군(八路軍)으로 옮겨갔을 때 국민당(國民黨) 지역 조선의용대에 잔류하였으며, 10월 『조선의용대통신』에 3년간 조선의용대 대원으로서의 활동을 총괄하는 글을 실었다.

1942년 5월 국민당 지역 조선의용대를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될 때 개편 일에 참가하고 간부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경상도의원에 선출되었다.

1943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총무과장 겸 편집부 담당자가 되었다. 같은 해 ‘자유 한국인대회’에 참석하여 주석에 선임되었다. 그 후 영국군의 요청으로 영국군의 대일전쟁이 벌어지던 인도 미얀마 전선으로 한국광복군 1개 분대병력을 통솔하고 가서 영국군 지원에 힘썼다.

해방 후 남쪽으로 귀국하였다.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조선민주혁명당 중앙집행위원, 1947년 조선민주혁명당을 개편한 인민공화당 서울시 지부장 등을 역임한 후 월북하였다.

1948년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개최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50년 6‧25사변 발발 후 조선인민군이 점령한 서울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6‧25사변이 끝난 후 조소(朝蘇)친선협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1958년 말 공직에서 쫓겨났다.

[참고문헌]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編)
朝鮮義勇隊編成表
韓國獨立運動史 資料(國史編纂委員會編)
大韓民國臨時政公報
大韓民國臨時政府文書輯覽
獨立新聞 重慶版(1943.6.1)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