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룡(南昇龍)
[상세내용]
남승룡(南昇龍)
1912년 11월 23일~2001년 2월 20일. 일제 강점기 마라토너. 출신지는 전라남도 순천(順天)이다.
부인은 소갑순(蘇甲順)이다.
순천공립보통학교(順天公立普通學校: 현 순천남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하던 중, 전라남도 대표로 조선신궁대회에 출전하여 1만m에서 4위를 차지하였고,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면서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육상계 명문으로 꼽히던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일본의 아사부[麻布]중학으로 전학하였다. 졸업 후에 일본 귀족 기다바라케의 후원으로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수학하였다.
메이지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6년에 일본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양정고등보통학교 1년 후배였던 손기정(孫基禎)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올림픽 대표로 뽑혔다.
난 쇼류라는 일본이름을 달고 참가한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서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그늘에 가려져 커다란 주목은 받지 못했으나, 손기정과 함께 나란히 1, 3위를 차지함으로써 나라를 빼앗겼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안겨 주었다.
1947년 서윤복(徐潤福)이 우승한 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35세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붙이고 출전하여 2시간 40분 10초의 기록으로 10위를 차지하였다.
1947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육상경기연맹의 이사를 역임하였고, 전남대학교 교수로 자리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한국 육상 발전에 힘썼으며, 1964년 도쿄[東京]올림픽에 마라톤 코치로 참가한 것을 끝으로 육상계를 떠났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고향인 순천시에서는 마라토너 남승룡(南昇龍)을 기념하여 ‘순천남승룡마라톤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슬하에 아들 남운기(南雲基)‧남충웅(南忠雄) 등 2남 4녀를 두었다.
부인은 소갑순(蘇甲順)이다.
순천공립보통학교(順天公立普通學校: 현 순천남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하던 중, 전라남도 대표로 조선신궁대회에 출전하여 1만m에서 4위를 차지하였고,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면서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육상계 명문으로 꼽히던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일본의 아사부[麻布]중학으로 전학하였다. 졸업 후에 일본 귀족 기다바라케의 후원으로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수학하였다.
메이지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6년에 일본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양정고등보통학교 1년 후배였던 손기정(孫基禎)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올림픽 대표로 뽑혔다.
난 쇼류라는 일본이름을 달고 참가한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서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그늘에 가려져 커다란 주목은 받지 못했으나, 손기정과 함께 나란히 1, 3위를 차지함으로써 나라를 빼앗겼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안겨 주었다.
1947년 서윤복(徐潤福)이 우승한 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35세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붙이고 출전하여 2시간 40분 10초의 기록으로 10위를 차지하였다.
1947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육상경기연맹의 이사를 역임하였고, 전남대학교 교수로 자리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한국 육상 발전에 힘썼으며, 1964년 도쿄[東京]올림픽에 마라톤 코치로 참가한 것을 끝으로 육상계를 떠났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고향인 순천시에서는 마라토너 남승룡(南昇龍)을 기념하여 ‘순천남승룡마라톤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슬하에 아들 남운기(南雲基)‧남충웅(南忠雄) 등 2남 4녀를 두었다.
[참고문헌]
한국일보(2001. 2. 20)
조선일보(2001. 2. 21)
조선일보(2001. 2. 21)
[집필자]
이지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