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원(徐球源)
[상세내용]
서구원(徐球源)
1912년∼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운학면(雲鶴面)이고, 거주지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중구(中區) 봉래정(蓬萊町: 현 봉래동)이다.
중농(中農)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수학한 후 농사짓는 일에 종사하였다.
1932년 7월경 홍원농민조합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1933년 12월과 1935년 5월에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함흥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풀려났다.
그 후 경성부로 와서 권영태(權榮台)가 이끄는 조선공산당 조직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위해 힘썼으며, 조선공산당재건경성준비조직에도 가담하였다.
1936년 5월 간도(間島)공산당 검거 사건 때 체포된 피고의 사형 반대운동을 위해, 이재유(李載裕)조직과 김희성(金熙星)조직의 통합투쟁 등을 모색하던 중 같은 해 1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친일로 변절하여 1938년 7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중농(中農)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수학한 후 농사짓는 일에 종사하였다.
1932년 7월경 홍원농민조합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1933년 12월과 1935년 5월에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함흥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풀려났다.
그 후 경성부로 와서 권영태(權榮台)가 이끄는 조선공산당 조직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위해 힘썼으며, 조선공산당재건경성준비조직에도 가담하였다.
1936년 5월 간도(間島)공산당 검거 사건 때 체포된 피고의 사형 반대운동을 위해, 이재유(李載裕)조직과 김희성(金熙星)조직의 통합투쟁 등을 모색하던 중 같은 해 1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친일로 변절하여 1938년 7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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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