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식(李殷植)
[상세내용]
이은식(李殷植)
1902년(광무 6)∼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이다.
양말공장 직공과 구둣방에서 양화공생활을 하였다.
1923년 7월 경성양말직공조합 위원장직을 맡아 양말직공파업 전말에 대해 강연하였으며, 그 후 조선양말직공조합총동맹 조직준비위원‧경성노동연맹 집행위원‧조선노동총동맹 상무집행위원‧신흥청년동맹 회원‧혁청당(革淸黨) 당원‧한양청년연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4년 9월 조선노동총동맹과 재경성무명회(在京城無名會)가 함께 가뭄으로 피해를 본 농촌구제 목적의 조선기근구제회를 설립하는 데 동참하였다.
1926년 정우회(正友會) 회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1월 협우청년회(協友靑年會) 집행위원직을 맡아 운영자가 일본인인 숭신인(崇神人)조합에서 일어난 부당노동조건에 대해 조사하였다. 2월에는 조선공산당 당원이 되어 경성부 제2구 제5야체이카와 조선공산당 노동부문 프랙션 소속으로 활동하던 중 6월 무렵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 때 정우회 소속원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45년 11월 12일 결성된 조선인민당(朝鮮人民黨)의 중앙집행위원회 개최가 같은 달 25일에 개최되었을 때 노농부장(勞農部長)에 선출되었다.
양말공장 직공과 구둣방에서 양화공생활을 하였다.
1923년 7월 경성양말직공조합 위원장직을 맡아 양말직공파업 전말에 대해 강연하였으며, 그 후 조선양말직공조합총동맹 조직준비위원‧경성노동연맹 집행위원‧조선노동총동맹 상무집행위원‧신흥청년동맹 회원‧혁청당(革淸黨) 당원‧한양청년연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4년 9월 조선노동총동맹과 재경성무명회(在京城無名會)가 함께 가뭄으로 피해를 본 농촌구제 목적의 조선기근구제회를 설립하는 데 동참하였다.
1926년 정우회(正友會) 회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1월 협우청년회(協友靑年會) 집행위원직을 맡아 운영자가 일본인인 숭신인(崇神人)조합에서 일어난 부당노동조건에 대해 조사하였다. 2월에는 조선공산당 당원이 되어 경성부 제2구 제5야체이카와 조선공산당 노동부문 프랙션 소속으로 활동하던 중 6월 무렵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 때 정우회 소속원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45년 11월 12일 결성된 조선인민당(朝鮮人民黨)의 중앙집행위원회 개최가 같은 달 25일에 개최되었을 때 노농부장(勞農部長)에 선출되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6.7.24‧25) 외
중앙신문(1945.11.26)
高等警察關係年表
중앙신문(1945.11.26)
高等警察關係年表
[집필자]
박상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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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