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金世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138D604B1678X0 |
이명(異名) | 김세원(金世元) |
생년 | 1895(고종 32) |
졸년 | 1945 |
시대 | 항일기 |
본관 | 안동(安東[舊]) |
활동분야 | 왕실 > 귀족 |
[상세내용]
김세현(金世顯)
1895년(고종 32) 9월 17일∼1945년 4월 7일. 일제 강점기 귀족. 본관은 안동(安東[舊])이다. 다른 이름으로 김세원(金世元)이 있다. 본적은 한성부(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숭인동(崇仁洞)이다.
1910년(융희 4) 이완용(李完用)에 의해 조종당하는 친일단체 정우회(政友會)의 총재직을 책임지고 일본의 조선 합병에 협력한 공으로 경술국치 후 김세현(金世顯)의 조부 김종한(金宗漢)은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男爵) 작위를 받았다. 이러한 조부 김종한이 1932년 11월 13일에 죽자 ‘조선귀족령(朝鮮貴族令)’에 따라 그해 12월 15일 조부의 남작 작위와 은사공채의 권리를 손자인 그가 이어받았다.
그는 일본 정부로부터 1915년 11월에는 종5위에, 그 후에는 정5위로 서위되었고, 1928년 11월에는 소화대례기념장(昭和大禮記念章)을 받았으며, 1940년 11월에는 일본기원 2600년 축전기념장을 받고 정4위에 서위되었다. 1939년에는 조선유도연합회의 평의원으로도 활약하였다.
1910년(융희 4) 이완용(李完用)에 의해 조종당하는 친일단체 정우회(政友會)의 총재직을 책임지고 일본의 조선 합병에 협력한 공으로 경술국치 후 김세현(金世顯)의 조부 김종한(金宗漢)은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男爵) 작위를 받았다. 이러한 조부 김종한이 1932년 11월 13일에 죽자 ‘조선귀족령(朝鮮貴族令)’에 따라 그해 12월 15일 조부의 남작 작위와 은사공채의 권리를 손자인 그가 이어받았다.
그는 일본 정부로부터 1915년 11월에는 종5위에, 그 후에는 정5위로 서위되었고, 1928년 11월에는 소화대례기념장(昭和大禮記念章)을 받았으며, 1940년 11월에는 일본기원 2600년 축전기념장을 받고 정4위에 서위되었다. 1939년에는 조선유도연합회의 평의원으로도 활약하였다.
[참고문헌]
經學院雜誌 제45호(1940년 12월)
관보(일본내각, 1941년 10월 23일)
역사와 현실 제63호(2007년 3월)
조선총독부관보(1930년 1월 28일 부록) 등
관보(일본내각, 1941년 10월 23일)
역사와 현실 제63호(2007년 3월)
조선총독부관보(1930년 1월 28일 부록) 등
[집필자]
신상범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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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