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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호(都容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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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95(고종 32)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상세내용]

도용호(都容浩)
1895년(고종 32)∼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함흥(咸興)이다.

동생으로 반일통일전선조직 신간회(新幹會) 함흥지회와 고려공산청년회에서 간부를 지낸 도관호(都寬浩)가 있다.

1919년 3‧1운동 후 함흥청년구락부를 조직하였으며, 함흥청년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0년 서울의 사회혁명당 결성에 가담하였다.

1921년 5월 상해파(上海派) 고려공산당 창립대회가 상해에서 열리자 참석하였으며,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고려공산당 임시연합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극동민족대회가 개최되자 참석하고 귀국하였다.

1923년 1월 독립운동통일전선 결성과 임시 정부 제도개선 등에 대한 논의를 위해 상해국민대표회가 개최되자 참석하고 귀국한 후, 1923년 7월 신의주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3년 8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1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3개월 감형을 받아, 1924년에 석방되었다.

1925년 2월 함경남도청년대회 준비위원에 선임되었으며, 같은 해 6월 조선공산당 당원이 되어 활동하던 중, 1926년 8월경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 관련자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감한 후 조선일보 함흥지국장을 지내면서 반일통일전선조직인 신간회(新幹會) 함흥지회 회원이 되었다. 1930년 1월 ‘제4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 때 와해된 조선공당 재건을 위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가입하여 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 힘쓰던 중, 1931년 8월 함경북도 청진(淸津)에서 체포되어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3.8.4)
두산백과(http://www.doopedia.co.kr/)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