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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선(金敎善)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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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92(고종 29)
졸년1969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상세내용]

김교선(金敎善)
1892년(고종 29) 6월 6일∼1969년 4월 9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에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홍일선(洪鎰善)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시 갈전면(葛田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계획하였다. 3월 29일 인근에 거주하던 이순구(李旬求)‧한동규(韓東奎)에게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여 찬동을 얻어냈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 이순구‧한동규 등이 장터에 모여 있던 상인들의 찬동을 얻어 유관순(柳寬順)‧조인원(趙仁元) 등이 주동하는 시위행렬과 합세하여 3천여 명의 시위 군중을 선도하였다.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진행하였다.

일본 헌병들의 강압적인 무력진압이 시작되어 사상자가 발생하자, 이백하(李栢夏)‧이순구‧한동규 등과 함께 100여 명의 시위대를 인솔하여 일본 헌병주재소에서 시위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