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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래(李明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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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90(고종 27)
졸년1952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한의학자

[상세내용]

이명래(李明來)
1890년(고종 27)~1952년. 일제 강점기 한의학자. 출신지는 서울 중구(中區)이다. 천주교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공세리(貢稅里)로 들어갔다가, 1906년(광무 10) 한방의서의 비방과 프랑스 선교사 드비즈 신부의 도움을 받아 ‘이명래 고약(膏藥)’을 개발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치료활동을 펼쳤다.

1920년에 서울로 돌아와 고약의 효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대중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1936년 둘째 사위 이광진에게 고약제조법이 전수되었다. 1952년 이명래(李明來)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뒤, 1956년 딸 이용재(李容載)가 ‘명래제약’을 설립하고 고약을 대량생산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시중 약국에서는 2002년부터는 판매되지 않았고, 서울 서대문구(西大門區) 충정로(忠正路)에 위치한 ‘명래 한의원’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2001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명래 고약’은 해방 이후부터 가정상비약의 대명사로 평가받았으며, 최근 GP제약이 이명래의 고약제조법을 인수하여 다시 상품화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하나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