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응복(芮應福)
[상세내용]
예응복(芮應福)
1890년(고종 27)∼1924년 8월 29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의용군. 본적은 평안북도 자성군(慈城郡) 삼량면(三量面)이고, 출신지는 평안북도 자성군이다.
1923년 참의부(參議府)에 입대하여 평안북도 자성군 임시주둔대원(臨時駐屯隊員)으로 활동하였다.
참의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었을 당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 중대가 임시 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한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는 독립운동단체로 활발한 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참의부의 군사 활동은 압록강 유역과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경을 넘어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등 활발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으므로 국내 진격전으로 대표되었다.
1924년 6월 25일 평안북도 자성군 이평면(梨坪面)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가 일본 경찰 2명을 사살하였다.
1924년 8월 29일 이평면 심연포(深淵浦)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가 순국하였다.
1995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1923년 참의부(參議府)에 입대하여 평안북도 자성군 임시주둔대원(臨時駐屯隊員)으로 활동하였다.
참의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었을 당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 중대가 임시 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한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는 독립운동단체로 활발한 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참의부의 군사 활동은 압록강 유역과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경을 넘어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등 활발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으므로 국내 진격전으로 대표되었다.
1924년 6월 25일 평안북도 자성군 이평면(梨坪面)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가 일본 경찰 2명을 사살하였다.
1924년 8월 29일 이평면 심연포(深淵浦)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가 순국하였다.
1995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포상자 공적조서
포상자 공적조서
[집필자]
김경희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