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흠(具然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6CC5F0D760B1883X0 |
이명(異名) | 구창해(具滄海) |
이명(異名) | 구창애(具蒼崖) |
이명(異名) | 강재후(江載厚) |
생년 | 1883(고종 20) |
졸년 | 1937 |
시대 | 항일기 |
활동분야 | 사회 > 사회주의자 |
[상세내용]
구연흠(具然欽)
1883년(고종 20)∼1937년.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구창해(具滄海)‧구창애(具蒼崖)‧강재후(江載厚)이다. 출신지는 경기도 양주(楊州)이다.
부친은 철원군수를 지냈다.
1922년 이후 무산자동맹회와 신사상연구회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6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에 가입하였고,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 1929년 동방피압박민족반제동맹준비회로 들어가 총무부비서로 임명되었으며, 기관지 『앞으로』를 발간하였다. 1932년 상해 등지에서 ‘3‧1운동 기념시위’‧‘6‧10만세운동 기념시위’ 등을 이끌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8년형에 처해졌다.
부친은 철원군수를 지냈다.
1922년 이후 무산자동맹회와 신사상연구회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6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에 가입하였고,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 1929년 동방피압박민족반제동맹준비회로 들어가 총무부비서로 임명되었으며, 기관지 『앞으로』를 발간하였다. 1932년 상해 등지에서 ‘3‧1운동 기념시위’‧‘6‧10만세운동 기념시위’ 등을 이끌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8년형에 처해졌다.
[참고문헌]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청계연구소, 1986)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감수, 창작과 비평사, 1996)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감수, 창작과 비평사, 1996)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