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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영(黃萬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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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응칠(應七)
호(號)국오(菊塢)
생년1875(고종 12)
졸년1939
시대조선후기
본관평해(平海)
활동분야독립운동가

[상세내용]

황만영(黃萬英)
1875년(고종 12) 6월 20일∼1939년 4월 25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응칠(應七)이고, 호는 국오(菊塢)이다.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이다.

1905년(광무 9)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국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당시 울진군에는 성익현(成益鉉)이 일으킨 의진(義陣)이 주둔하였는데, 황만영(黃萬英)은 이곳에 군자금으로 800냥을 지원하였다.

1907년(융희 1)에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新民會)에 가담하였다.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서 고향인 울진군 기성면(箕城面) 사동리(沙銅里)에 대흥학교(大興學校)를 설립하였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1912년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이후 이곳에서 이시영(李始榮) 등과 함께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설립하고, 재정업무를 담당하였다.

1913년에는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순회강연을 실행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군자금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울진지부(蔚珍支部)의 지부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상훈으로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愛族章)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