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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李章雨)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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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71(고종 8)
졸년1944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관료

[상세내용]

이장우(李章雨)
1871년(고종 8)∼1944년. 일제 강점기 관료. 창씨한 이름은 이와무라[巖村章雨]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하서정(下西町)이다.

부인은 배조양(裵朝陽)이다.

대구지방의 대지주이자 지역 유지로 대한제국의 육군부위(陸軍副尉)를 지내다가 1907년(융희 1)에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된 후부터 대구 지역의 경제계에서 활약하였다. 1912년에는 대구은행, 1913년에는 대구지주조합 창립에도 참여하였으며, 이후 대구은행감사, 경일은행감사, 대구주조주식회사 이사, 대구상업회의소 상무위원 및 특별위원, 경상북도 농회부회장과 조선농회 통상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18년부터는 대구부 협의회원, 경상북도 도평의회원(道評議會員), 경상북도 미곡통제연합회 부회장 등을 맡으면서 일본의 식민지통치에 협력하였다. 1919년에는 대구 지역의 친일관공리와 지주 및 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조직한 대구자제단(大邱自制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3‧1운동을 방해하였다. 또 대구소년보호소와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의 조선지방 본부에 많은 액수를 기부하는 등 조선을 통치하는 일본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41년에는 친일 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설립에 참여하여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앞장서서 일했으며, 1943년에는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에 임명되는 등, 1944년 사망 직전까지 일본에 빌붙어 부와 권력을 누렸다.

일본 정부로부터 1928년 소화대례기념장(昭和大禮記念章)을, 1933년 조선나예방협회(朝鮮癩豫防協會)에 6천 원을 기부한 공으로 포상을, 1937년 대일본 무덕회 조선지방 본부 무덕전(武德殿) 건축비를 1만 원 기부한 공으로 감수포장(紺綏褒章)을, 1938년에는 1927년 경상북도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설립비로 4,816원을 기부하여 포상을 받는 등 여러 차례 포상을 받았다.

[참고문헌]

경성일보(1920.12.4)
매일신보(1918.7.13)
朝鮮臨戰報國團槪要(조선임전보국단, 1941)
조선총독부관보(1943.8.13) 등
朝鮮總督府始政二十五周年記念表彰者名鑑(1935)

[집필자]

신상범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