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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제(金光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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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66(고종 3)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사회 > 민족운동가
출신지충청남도 보령

[상세내용]

김광제(金光濟)
1866년(고종 3)∼미상. 민족운동가. 충청남도 보령 출신.

1907년 대구에서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부사장 서상돈(徐相敦)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國債一千三百萬과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였다.

그 요지는 대한국민 2천만명이 담배를 끊어 1개월간 담배값 20전씩을 3개월 저축하면 1천3백환이 되므로 전국민이 3개월간 단연(斷煙)하여 그 돈으로 이완용(李完用)내각이 일본으로부터 차관한 1천3백만환을 갚아서 경제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서울에서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 등을 비롯한 민족언론기관들의 적극적 호응을 얻은 결과 전국적 운동으로 발전하여 한말국권회복운동 가운데 중요한 운동의 하나가 되었다.

1910년 만주로 망명, 압록강 대안의 동로홍묘자(東路紅廟子)에 일신학교(日新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하여 교육구국운동에 헌신하였다.

3‧1운동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유학생들과 제2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국내외에 배포하고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려다 일본경찰에 잡혔다.

198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大同報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國債報償運動과 프레스캠페인(崔埈, 白山學報 3, 1967)
韓末國債報償運動에 관한 硏究(李松姬, 梨大史苑 15, 1978)

[집필자]

신용하(愼鏞廈)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