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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姜敬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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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58(철종 9)
졸년1922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관료

[상세내용]

강경희(姜敬熙)
1858년(철종 9) 8월 15일∼1922년. 일제 강점기 관료. 자는 성일(聖一)이고, 호는 유당(有堂)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남부(南部) 회현방(會賢坊)이다. 부친은 강만형(姜晩馨)이고, 생부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강문형(姜文馨)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강민희(姜敏熙)와 동생 강돈희(姜敦熙)가 있다.

1885년(고종 22) 증광시 병과 30위에 문과 급제한 후,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대한제국 시절에는 중추원의관‧비서원승 등의 관원으로 활동하였다. 1900년대에 들어서도 중추원의관‧비서원승‧전선사장선‧시강원부첨사‧규장각부제학‧중추원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908년(융희 2)에는 대동학회의 평의원과 경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융희 3) 10월부터는 공자교회의 상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이완용의 주도로 조직된 국민연설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또 국민협성회의 합방실행추진단체인 한국평화협회에서 자선부장을 지냈다. 1911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로 임명되어 약 10년간 활동하였다.

1915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로 재직 중에 경기도 시흥군 동면의 공동묘지 용지를 기부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목배를 받았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대한제국관원이력서
조선총독부관보(1911.7.11) 외
통감부문서10
대한민보(1909.8.19)
황성신문(1909.12.5) 외

[집필자]

김은지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