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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빈(朴齊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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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문경(文卿)
생년1858(철종 9)
졸년1921
시대조선후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관료
박화수(朴禾壽)
출신지서울

[상세내용]

박제빈(朴齊斌)
1858년(철종 9)∼1921년. 조선 말기의 관료‧친일분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문경(文卿). 서울 출신. 박화수(朴禾壽)의 아들이다.

1874년(고종 1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그해에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가 되고, 다음해 9월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었다.

1881년 승정원주서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고, 1882년 홍문관교리홍문관부수찬이 되어 삼사의 주요업무인 전한(典翰)의 편찬과 언론문필 등 규제‧규찰의 업무를 맡아보았다.

1885년 사헌부장령이 되었고, 그해 4월 종친부정(宗親府正)홍문관부응교가 되었다.

1886년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홍문관응교를 맡았다.

1890년 통정(通政)에 승임되고 이어 병조참의가 되었다. 그해 3월 중추부첨지가 되었으며, 9월 승정원동부승지, 10월 공조참의가 되었다.

1891년 3월 사간원대사간이라는 막중한 업무를 담당하였고, 1893년 7월 승정원우부승지가 되었다.

1894년 7월 내각개편과 관제개정으로 새로 발족한 군무아문(軍務衙門)참의가 되어 약 1개월 동안 군사업무를 처리하였다.

1897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으로 주임(奏任) 5등에 병승(並陞)하였으나 중추원의관은 불과 1개월 만에 면관되고 말았다.

1899년 비서원승(秘書院丞)이 되었고 종2품관으로 승진되었다.

1900년 2월 궁내부특진관으로 전임하여 다섯번이나 일을 맡아 처리하였으며, 그해 4월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로 칙임 4등에 승임되었다.

1901년 4월 장례원소경, 6월 경효전제조사직서제조가 되었다.

1903년 2월 영희전제조, 4월 종묘서제조를 역임하였다.

1904년 8월 전라북도순찰사가 되었으나, 1905년 5월 심판사(審辦事)로 인하여 평리원(平理院)에 구속되어 5개월 뒤인 10월에 석방되었다.

1907년 8월 승녕부부총관(承寧府副摠管) 칙임 2등과 가의(嘉義)로 승진되었다.

이때부터 친일적인 작태가 더욱 노골화되었다.

1909년 안중근(安重根)이토(伊藤博文)를 총살하자 친일파 민병석(閔丙奭) 등과 사죄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이토의 국장에 참석하였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강제로 점령당한 뒤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총독부의 중추원찬의가 되었고, 1911년 7월 경학원(經學院)의 부제학이 되었다.

[참고문헌]

日省錄
高宗實錄
純宗實錄
承政院日記
大韓帝國官員履歷書
陰晴史(金允植)
續陰晴史(金允植)
朝鮮貴族列傳(大村友之丞, 朝鮮總督府印刷局, 1910)

[집필자]

이현희(李炫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