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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준원(嚴俊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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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55(철종 6)
졸년1938
시대조선후기
본관영월(寧越)
활동분야군인 > 군인

[관련정보]

[상세내용]

엄준원(嚴俊源)
1855년(철종 6) 3월 26일∼1938년 2월 13일. 일제 강점기 군인. 본관은 영월(寧越)이고,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내자동(內資洞)이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嚴氏)와는 오누이 사이이다.

1901년(광무 5)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한성부재판소수반판사(漢城府裁判所首班判事)‧군부협판(軍部協辦) 등을 지냈다. 육군보병참령(陸軍步兵參領)이 되어 친위(親衛) 제1연대장과 중앙은행창설사무위원(中央銀行創設事務委員)으로 활동하였다. 1903년(광무 7) 육군참장(陸軍參將)과 원수부기록국총장(元帥府記錄局總長)‧군제의정관(軍制議定官)을 거쳐 1905년(광무 9) 헌병사령관(憲兵司令官)에 임명되어 팔괘장(八卦章)을 받았다. 1906년(광무 10) 사립진명여학교(私立進明女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192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에 선임되어 1927년까지 활동하였다.

1925년부터 국민협회고문(國民協會顧問)으로 활동하면서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와 신일본주의(新日本主義) 달성을 위해 조선의 독립불가론을 주장하는 한편, 일제의 식민통치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활동을 펼쳤다. 1927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에 재선임되어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였으며, 조선박람회평의원(朝鮮博覽會評議員)과 조선나병예방협회(朝鮮癩病豫防協會) 발기인 등 사회단체 활동도 꾸준히 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 1915년 다이쇼[大正]대례기념장, 1927년 훈4등 서보장(瑞寶章), 1928년 쇼와[昭和]대례기념장 등을 받았으며, 종4위에 서위되어 귀족의 예우에 준하는 대우도 받았다.

[참고문헌]

관보(1901.6.4) 외
일본내각 관보(1913.5.23)
조선총독부관보(1921.5.3) 외
경성일보(1925.1.21) 외
국민협회운동사(1931)
한국여성사 2(1972) 등

[집필자]

도승현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