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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만(李海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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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문신

[상세내용]

이해만(李海萬)
생졸년 미상. 조선 말기 문신.

관직은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 이후 탁지부회계국장(度支部會計局長)‧탁지부사세국장(度支部司稅局長)‧탁지부회계국장(度支部會計局長)‧탁지부사계국장(度支部司計局長)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광무 1)에 궁궐 안에 역대 임금들의 초상(肖像)을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던 진전(眞殿: 선원전(璿源殿))을 짓고,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暎嬪李氏)를 제사 지내던 선희궁(宣禧宮)을 옮겨 지을 때 감동(監董)으로 참여한 공로로 가자(加資)되었다. 1898년(광무 2)에는 대신(臺臣)들의 추천으로 칙임관(勅任官) 4등에 제수되었다. 1901년(광무 5) 탁지부사세국장으로 재임하였는데, 1894년(고종 31) 경상남도 진주군(晉州郡)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의 과세농지에 해당하는 땅 일부가 이중으로 면세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장부를 꾸민 사실이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 민병석(閔丙奭)에 의해 알려지면서 면직처분을 받았다. 1902년(광무 6)에 시행된 관리 승급 때 정3품에서 종2품으로 승급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