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영(李瑞永)
[상세내용]
이서영(李瑞永)
1855년(철종 6)~미상. 조선 말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부친은 이민성(李敏星)이다.
1882년(고종 19) 유생으로 춘당대 응제(應製)에 응시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자격을 갖추었고, 같은 해에 증광시에서 병과 1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부응교(副應敎)‧선전관(宣箋官)‧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인재를 천거(薦擧)하는 행사가 시행되었을 때 윤익(尹瀷)‧조동면(趙東冕)‧윤상학(尹尙學) 등과 함께 추천되었고, 1884년(고종 21)에는 홍문록(弘文錄)의 권점(圈點)을 받았으며, 1885년(고종 22)에는 도당록(都堂錄)의 권점을 받았다. 1887년(고종 24) 부응교 재임 시절, 국문(鞠問)의 공술(供述)에서 거론된 당사자들을 잡아다가 나문(拿問)할 것을 청하는 홍문관(弘文館)의 연명차자(聯名箚子)에 동참하였다. 1888년(고종 25) 정월 초하루 설을 맞아 임금에게 진하(陳賀)를 올릴 때 함께 참여하였고, 가설한 가상존호도감(加上尊號都監)에서 선전관(宣箋官)으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예방승지(禮房承旨) 윤치성(尹致聖)‧대거승지(對擧承旨) 조희일(趙熙一) 등과 함께 가자(加資)되었다.
부친은 이민성(李敏星)이다.
1882년(고종 19) 유생으로 춘당대 응제(應製)에 응시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자격을 갖추었고, 같은 해에 증광시에서 병과 1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부응교(副應敎)‧선전관(宣箋官)‧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인재를 천거(薦擧)하는 행사가 시행되었을 때 윤익(尹瀷)‧조동면(趙東冕)‧윤상학(尹尙學) 등과 함께 추천되었고, 1884년(고종 21)에는 홍문록(弘文錄)의 권점(圈點)을 받았으며, 1885년(고종 22)에는 도당록(都堂錄)의 권점을 받았다. 1887년(고종 24) 부응교 재임 시절, 국문(鞠問)의 공술(供述)에서 거론된 당사자들을 잡아다가 나문(拿問)할 것을 청하는 홍문관(弘文館)의 연명차자(聯名箚子)에 동참하였다. 1888년(고종 25) 정월 초하루 설을 맞아 임금에게 진하(陳賀)를 올릴 때 함께 참여하였고, 가설한 가상존호도감(加上尊號都監)에서 선전관(宣箋官)으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예방승지(禮房承旨) 윤치성(尹致聖)‧대거승지(對擧承旨) 조희일(趙熙一) 등과 함께 가자(加資)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高宗實錄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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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