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집(趙鍾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885C9D1B1858X0 |
자(字) | 중성(仲成) |
생년 | 1858(철종 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배천(白川)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조용재(趙容在) |
생부 | 조은재(趙殷在)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종집(趙鍾集)
1858년(철종 9)~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군성(君成)‧중성(仲成)이다.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전주부판관(前行全州府判官) 조용재(趙容在)이고, 생부는 유학(幼學) 조은재(趙殷在)이다. 동생은 조종업(趙鍾業)이다.
1885년(고종 22) 식년시에서 생원 1등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888년(고종 25) 별시 문과에서 병과 4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김상덕(金商悳)‧윤병수(尹秉綬)‧이종원(李種元)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다. 1889년(고종 26) 헌납(獻納)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죄인 이승희(李承喜)에 대해 유배 처분이 내려지자 국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호소하였다. 이후에도 수찬(修撰)‧지평(持平) 등을 역임하며, 죄인들에 대한 관대한 처분이 내려질 때마다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1898년(광무 2)에는 황제와 황태자의 건강이 회복된 것을 진하(陳賀)하는 권정례(權停例)를 거행할 때, 선전관(宣箋官)으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전주부판관(前行全州府判官) 조용재(趙容在)이고, 생부는 유학(幼學) 조은재(趙殷在)이다. 동생은 조종업(趙鍾業)이다.
1885년(고종 22) 식년시에서 생원 1등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888년(고종 25) 별시 문과에서 병과 4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김상덕(金商悳)‧윤병수(尹秉綬)‧이종원(李種元)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다. 1889년(고종 26) 헌납(獻納)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죄인 이승희(李承喜)에 대해 유배 처분이 내려지자 국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호소하였다. 이후에도 수찬(修撰)‧지평(持平) 등을 역임하며, 죄인들에 대한 관대한 처분이 내려질 때마다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1898년(광무 2)에는 황제와 황태자의 건강이 회복된 것을 진하(陳賀)하는 권정례(權停例)를 거행할 때, 선전관(宣箋官)으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司馬榜目
國朝榜目
司馬榜目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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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