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득련(金得鍊)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B4DDB828B1852X0
자(字)윤구(允九)
호(號)춘파(春坡)
생년1852(철종 3)
졸년1930
시대조선후기
본관우봉(牛峰)
활동분야관료 > 역관
김재우(金載禹)

[상세내용]

김득련(金得鍊)
1852년(철종 3)~1930년. 조선 말기의 문신, 역관(譯官). 자는 윤구(允九)이고, 호는 춘파(春坡)이다.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통문관지(通文館志)의 저자인 김지남(金指南)의 7대손이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재우(金載禹)의 아들이다.

1873년(고종 10) 계유 식년시(式年試) 역과(譯科)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봉사(奉事), 교회(敎誨)‧첨정(僉正)을 지냈다. 1888년(고종 25) 박문국주사(博文局主事)가 되었다가 같은 해 부사과(副司果)로 옮겼다. 1890년(고종 27) 한학당하역관(漢學堂下譯官)으로 가자(加資)의 은전을 받았으며,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가 이해 10월에 오위장(五衛將)으로 승차하였다. 또 다시 부호군으로 옮겼다가 1894년(고종 31)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 의정부참의(議政府參議)를 역임하고, 1895년(고종 32) 내각참서관(內閣參書官) 4등에 임용되었다.

1896년(고종 33) 4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戴冠式)에 부아특명전권공사(赴俄特命全權公使) 2등 참서관(參書官)과 주임관(奏任官) 4등에 서임되어 특명전권공사 민영환(閔泳煥)을 수행하여 다녀왔다. 이때 인천을 떠나 상해(上海)‧나가사키(長崎)‧도쿄(東京)‧밴쿠버‧뉴욕‧런던‧베를린‧바르샤바를 경유하여 모스크바에 여장을 풀었고, 다시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견학한 후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이해 10월 하순 귀국하였다. 이때의 사행기록을 『환구일록(環璆日錄)』과『부아기정(赴俄記程)』, 한시집(漢詩集)인 『환구음초(環璆唫艸)』로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4월 1일 인천항을 떠날 때부터 그 해 10월 21일 다시 돌아올 때까지 사행과정 중에 각 지역에서 견문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의 저서는 당시 러시아의 사회 문화와 서양문물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반응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1902년(광무 6) 군부대신관방원(軍部大臣官房員)에 임용되었으며, 1907년(광무 11) 남양군수(南陽郡守)가 되었고, 1910년(융희 4) 정3품에서 종2품으로 가자되었다.

[참고문헌]

『부아기정(赴俄記程)』

[집필자]

박상진(朴相進)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