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균(金羽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6B0ADE0B1847X0 |
개명(改名) | 김상규(金商圭) |
자(字) | 익경(翼卿) |
생년 | 1847(헌종 1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부 | 김병로(金炳老) |
[상세내용]
김우균(金羽均)
1847년(헌종 13)~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익경(翼卿)이고, 개명은 김상규(金商圭)이다. 본관은 안동(安東[新])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김난순(金蘭淳)이고, 조부는 김신근(金愼根)이며, 부친은 김병로(金炳老)이다. 외조부는 대구서씨(大丘徐氏) 서대순(徐戴淳)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문과에 병과 27위로 급제하였다.
1875년(고종 12)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의 후보자에 오른 뒤 치른 소시(召試)에 합격하였고, 1876년(고종 13) 홍문관(弘文館)의 관원을 뽑는 후보자로 추천된 후,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에 제수되었다.
1878년(고종 15) 산실청도제조(産室廳都提調) 이하에게 시상할 때, 별겸춘추(別兼春秋)로서 공을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었다. 1883년(고종 20) 영광군수(靈光郡守)로 부임하러 가던 중 가노(家奴) 성인(性仁)이라는 자가 뇌물과 관련된 일을 두고 진선문(進善門)의 북을 치면서 호소하였다. 결국 소송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전라도 무주부(茂朱府)로 유배당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왕이 의금부의 도형(徒刑)과 유형(流刑)에 처해진 자의 명단을 본 뒤 방면(放免)할 것을 하교하였다.
증조부는 김난순(金蘭淳)이고, 조부는 김신근(金愼根)이며, 부친은 김병로(金炳老)이다. 외조부는 대구서씨(大丘徐氏) 서대순(徐戴淳)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문과에 병과 27위로 급제하였다.
1875년(고종 12)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의 후보자에 오른 뒤 치른 소시(召試)에 합격하였고, 1876년(고종 13) 홍문관(弘文館)의 관원을 뽑는 후보자로 추천된 후,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에 제수되었다.
1878년(고종 15) 산실청도제조(産室廳都提調) 이하에게 시상할 때, 별겸춘추(別兼春秋)로서 공을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었다. 1883년(고종 20) 영광군수(靈光郡守)로 부임하러 가던 중 가노(家奴) 성인(性仁)이라는 자가 뇌물과 관련된 일을 두고 진선문(進善門)의 북을 치면서 호소하였다. 결국 소송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전라도 무주부(茂朱府)로 유배당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왕이 의금부의 도형(徒刑)과 유형(流刑)에 처해진 자의 명단을 본 뒤 방면(放免)할 것을 하교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承政院日記
國朝榜目
承政院日記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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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