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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범(李舜範)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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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명(仲明)
생년1841(헌종 7)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함평(咸平)
활동분야문신
이계순(李啓淳)

[상세내용]

이순범(李舜範)
1841년(헌종 7)~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중명(仲明)이다.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거주지는 강원도 원주(原州)이다.

증조부는 헌납(獻納) 이광식(李光埴)이고, 조부는 현감(縣監) 이종덕(李鍾悳)이며, 부친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이계순(李啓淳)이다. 외조부는 김교영(金敎永)이고, 처부는 권언영(權彦榮)이다.

1864년(고종 1) 정시에 병과 4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언(正言)‧부교리(副敎理)‧부수찬(副修撰)‧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 등을 역임하였다.

1889년(고종 26) 경기도 지평현(砥平縣)에 살고 있던 유생 한용석(韓容奭)이 선정신(先正臣)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을 비난하면서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충익공(忠翼公) 조태채(趙泰采)‧충문공(忠文公) 이이명(李頤命) 등을 흉악한 무리라고 모욕함과 동시에 조태구(趙泰耉)‧최석항(崔錫恒)‧이광좌(李光佐)‧유봉휘(柳鳳輝) 등을 충신으로 치켜세우자 한용석의 처벌을 청하는 연명차자(聯名箚子)가 홍문관(弘文館)에서 올라갈 때 부수찬으로서 동참하였다. 1895년(고종 32)에는 국가 기강을 바로잡을 조항으로, 첫째 올바른 명분을 세울 것, 둘째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여 등용시킬 것, 셋째 표현된 문장(文章)의 귀천을 구별할 것, 넷째 병정(兵丁)은 늘리고 순검(巡檢)은 줄일 것, 다섯째 백성들의 부세(賦稅)를 줄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을 없앨 것, 여섯째 엄격한 규정에 맞게 성문(城門)을 여닫을 것 등을 상소하였다. 1904년(광무 8) 봉상사부제조 재임 시절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직후 조선의 강산을 개간하겠다는 명분으로 50년간 빌려 사용하겠다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일본 대리공사(代理公使) 하키하라[萩原]와 그에게 붙어 부(富)만을 탐하는 역적을 모조리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상소에 다소 과격한 표현이 문제가 되었고, 또 일본 대리공사까지 운운한 일이 외교 문제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부(法部)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참고문헌]

縉紳八世譜
國朝文科榜目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