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관(申泰寬)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D0DCAD00B1839X0 |
자(字) | 공오(公五) |
생년 | 1839(헌종 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태관(申泰寬)
1839년(헌종 5)∼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공오(公五)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부친은 신석만(申錫萬)이다.
1878년(고종 15)에 정시 병과에 문과 급제하였다. 1882년(고종 19)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재직 시 임오군란이 일어난 책임을 물어 훈련도감(訓鍊都監)을 없앨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려 시행시켰다. 그 후 안동부사로 파견되어 재직 중이던 1885년(고종 22) 여름 영남 지역에 큰 수해가 일어나자 백성을 구휼하는 데 힘썼다. 1891년(고종 28)부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902년(광무 6)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과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을 지냈다.
부친은 신석만(申錫萬)이다.
1878년(고종 15)에 정시 병과에 문과 급제하였다. 1882년(고종 19)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재직 시 임오군란이 일어난 책임을 물어 훈련도감(訓鍊都監)을 없앨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려 시행시켰다. 그 후 안동부사로 파견되어 재직 중이던 1885년(고종 22) 여름 영남 지역에 큰 수해가 일어나자 백성을 구휼하는 데 힘썼다. 1891년(고종 28)부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902년(광무 6)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과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을 지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文科榜目
國朝文科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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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