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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유(張錫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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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회백(晦伯)
호(號)춘담(春潭)
생년1838(헌종 4)
졸년1894(고종 31)
시대조선후기
본관인동(仁同)
활동분야문신
장운표(張運杓)

[상세내용]

장석유(張錫𥙿)
1838년(헌종 4)~1894년(고종 31). 조선 말기 문신. 자는 회백(晦伯)이고, 호는 춘담(春潭)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부친은 장운표(張運杓)이다. 첫째 부인은 남정헌(南廷獻)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이고, 둘째 부인은 김영식(金寧植)의 딸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1883년(고종 20) 별시 문과에서 병과 1위로 급제하였고, 이후 이대식(李大植) 등과 함께 수찬(修撰)에 임명되었다. 1884년(고종 21) 부교리(副校理)로 재직하며, 언관(言官)들의 언행이 다소 과격하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줄 것을 임금에게 건의하였고, 이후 장령(掌令)‧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888년(고종 25)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과 왕대비전(王大妃殿)에 존호(尊號)와 책보(冊寶)를 올리는 행사에서 좌통례(左通禮)의 소임을 수행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고, 1891년(고종 28)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