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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찬(宋秉瓚)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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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37(헌종 3)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은진(恩津)
활동분야문신
송달수(宋達洙)

[상세내용]

송병찬(宋秉瓚)
1837년(헌종 3)~미상. 조선 말기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거주지는 충청북도 옥천(沃川)이다.

부친은 산림처사(山林處士) 송달수(宋達洙)이다.

1874년(고종 1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891년(고종 28) 증광시 갑과에 장원으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진위현령(振威縣令)‧과천현감(果川縣監)‧직산현감(稷山縣監)‧송화현감(松禾縣監)‧대사간(大司諫)‧호조참의(戶曹參議)‧부호군(副護軍)‧대사성(大司成)‧동부승지(同副承旨)‧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등을 역임하였다. 1868년(고종 5) 진위현령 시절 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정순조(鄭順朝)이 올린 서계(書啓)에 의해 벌을 받았다. 1901년(광무 5) 제사를 올릴 때 신연배종(神輦陪從)으로 참여한 수고로움을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었다. 1906년(광무 10) 종2품이자 궁내부특진관 재임 시절에 1905년(광무 9)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맺어진 것에 대한 울분을 상소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자결한 종형(從兄) 송병선(宋秉璿)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윤철규(尹喆圭)라는 자가 고종 황제의 이름을 팔고 수레에 태워 강제로 내려 보낸 사연을 상소하면서 거짓으로 황제의 이름을 판 윤철규를 처벌해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나 고종의 외면으로 윤철규의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八道總錄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