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두(李中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911B450B1836X0 |
자(字) | 운경(運卿) |
호(號) | 소계(素溪) |
생년 | 1836(헌종 2) |
졸년 | 191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진성(眞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중두(李中斗)
1836년(헌종 2)∼1914년. 조선 말기 문신‧유학자. 자는 운경(運卿)이고, 호는 소계(素溪)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예안(禮安: 현 안동군(安東郡))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부친은 이만백(李晩栢)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생원 3등 14위로 합격한 뒤, 1880년(고종 17) 증광시 병과 50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이후 관직은 교리(校理)‧수찬(修撰)‧부사과(副司果)‧좌통례(左通禮)‧응교(應敎)‧병조참지(兵曹參知)‧부호군(副護軍)‧좌우부승지(左右副承旨) 등을 두루 역임하고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재직하던 중 고향으로 돌아갔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를 당한 뒤부터는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은거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부친은 이만백(李晩栢)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생원 3등 14위로 합격한 뒤, 1880년(고종 17) 증광시 병과 50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이후 관직은 교리(校理)‧수찬(修撰)‧부사과(副司果)‧좌통례(左通禮)‧응교(應敎)‧병조참지(兵曹參知)‧부호군(副護軍)‧좌우부승지(左右副承旨) 등을 두루 역임하고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재직하던 중 고향으로 돌아갔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를 당한 뒤부터는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은거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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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