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락(金景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CBDB77DB1834X0 |
자(字) | 오연(五衍) |
호(號) | 운포(雲圃) |
생년 | 1834(순조 34) |
졸년 | 191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의성(義城)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김경락(金景洛)
1834년(순조 34)∼1912년. 조선 말기 학자. 자는 오연(五衍)이고, 호는 운포(雲圃)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부친은 행승정원좌부승지(行承政院左副承旨)를 지낸 김진우(金鎭右)이다. 형은 김헌락(金獻洛)이다.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생원 3등 42위로 합격하였다. 성균관 유생으로 수학하던 중 갑오개혁이 일어나자 귀향하였다. 관직에 나아갈 뜻을 접고 학문에 정진하는 한편, 후학 양성에 힘썼다. 스승 김흥락이 죽자 강회(講會)의 주석(主席)을 맡았다. 안동의 유림이 안동향청(安東鄕廳)의 좌수(座首)로 추대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문집으로 『운포집(雲圃集)』이 있다.
부친은 행승정원좌부승지(行承政院左副承旨)를 지낸 김진우(金鎭右)이다. 형은 김헌락(金獻洛)이다.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생원 3등 42위로 합격하였다. 성균관 유생으로 수학하던 중 갑오개혁이 일어나자 귀향하였다. 관직에 나아갈 뜻을 접고 학문에 정진하는 한편, 후학 양성에 힘썼다. 스승 김흥락이 죽자 강회(講會)의 주석(主席)을 맡았다. 안동의 유림이 안동향청(安東鄕廳)의 좌수(座首)로 추대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문집으로 『운포집(雲圃集)』이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홍현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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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