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병교(李炳敎)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BCD1AD50B1829X0
자(字)경선(景善)
생년1829(순조 29)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광주(廣州)
활동분야문신
이의익(李宜翼)

[상세내용]

이병교(李炳敎)
1829년(순조 29)~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경선(景善)이다.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이기륜(李基崙)이고, 조부는 이종억(李宗億)이며, 부친은 이조판서(吏曹判書) 이의익(李宜翼)이다. 외조부는 강이원(姜履元)이고, 처부는 홍우신(洪祐信)이다.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병과 5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직장(直長)‧부수찬(副修撰)‧이조참의(吏曹參議)‧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부호군(副護軍)‧이조참판(吏曹參判)‧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866년(고종 3)에 임금이 효문전(孝文殿)에서 작헌례(酌獻禮)를 거행할 때 집전(執奠)으로 참여하여 가자(加資)되었다. 1872년(고종 9)에는 시호(諡號)를 짓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추상존호도감(追上尊號都監)에 참여한 공로로 다시 가자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나라가 망할 거라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 죄인 오윤근(吳潤根)의 부친, 그리고 자식들에게 사형이 내려졌는데, 이들을 노비로 삼는 정도에 그치라는 임금의 감형명령이 내려지자, 연명차자(聯名箚子)를 통해 원칙대로 사형시킬 것을 행좌승지(行左承旨) 신정희(申正熙) 등과 함께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縉紳八世譜
國朝文科榜目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