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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선(閔泳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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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선옥(旋玉)
호(號)옥여재(玉汝齋)
생년1875(고종 12)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여흥(驪興)
활동분야문신
민태호(閔台鎬)

[상세내용]

민영선(閔泳璇)
1815년(순조 15)~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선옥(旋玉)이고, 호는 옥여재(玉汝齋)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민태호(閔台鎬)이다. 형은 민영익(閔泳翊)‧민영기(閔泳琦)이다.

1888년(고종 25) 식년시에 진사 3등 182위로 합격했다. 1899년(광무 3)에 법부사리국장(法部司理局長) 주임관(奏任官) 4등이 되었고, 종2품 귀족원경(貴族院卿)이 되었다. 1900년(광무 4)에는 종2품 회계원경(會計院卿) 칙임관(勅任官) 4등과 종2품 법부사리국장 주임관(奏任官) 1등 및 철도원감독(鐵道院監督)이 되었다.

1901년(광무 5) 궁내부협판(宮內府協辦)과 종2품 철도원감독 칙임관 3등이 되어 특명전권공사를 겸임하였으며, 지계아문부총재(地契衙門副總裁)가 되었다. 1903년(광무 7)에는 출근 규정을 어긴 죄로 견책을 당하였다. 1904년(광무 8) 동지돈녕원사(同知敦寧院事)가 되었고 예식원부장(禮式院副長) 칙임관 3등을 거쳐, 1905년(광무 9)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과 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경상남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있던 1906년(광무 10) 1월에는 탐오한 행위를 한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올라오라는 전보에 불응한 죄로 파면되었다. 1906년 3월에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었고, 준원전(濬源展)을 고칠 때, 감동관(監董官)으로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3등 태극장(太極章)을 받았으며,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가 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