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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순(徐璟淳)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1CACBDC21CB1808X0
자(字)원직(元稷)
생년1808(순조 8)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대구(大丘)
활동분야문신
서선보(徐善輔)

[상세내용]

서경순(徐璟淳)
1808년(순조 8)∼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원직(元稷)이다.(주1)
자_원직
文蔭縉紳譜에는 元直, 『숭정기원후4임자식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壬子式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50])의 사마시 급제기록에는 原直으로 나옴.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목사(牧使) 서종집(徐宗集)의 후손으로, 고조는 서명관(徐命寬)이고, 증조부는 군수(郡守) 서광수(徐廣修)이며, 조부는 군수(郡守) 서유증(徐有曾)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영산현감(行靈山縣監) 서선보(徐善輔)와 모친 군수(郡守) 김강(金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제(庶弟)는 서필순(徐馝淳)이다. 부인은 이도성(李度誠)의 딸이다.

1852년(철종 3) 식년시에서 생원에 합격하였고, 1860년(철종 11)에는 춘당대(春塘臺)에서 실시된 칠석제(七夕製)에 참석하였으며,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1861년(철종 12) 식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였고, 1862년(철종 13)에는 관록(館錄)에 선발되었다. 1867년(고종 4)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다.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예조판서(禮曹判書)‧이조참판(吏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에는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에 존호(尊號)를 가상(加上)하는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올릴 때 독옥책관(讀玉冊官)으로 참여하였는데, 그 공로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高宗實錄
國朝文科榜目縉紳八世譜
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