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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항(趙秉恒)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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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구(汝久)
생년1800(정조 24)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문관
조학영(趙學永)

[상세내용]

조병항(趙秉恒)
1800년(정조 24)~미상. 조선 말기 문관. 자는 여구(汝久)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고조는 정언(正言)을 지낸 조상행(趙尙行)이고, 증조부는 참봉(參奉) 조근(趙瑾)이다. 조부는 현감(縣監)을 지낸 조진곤(趙鎭坤)이고, 부친은 조학영(趙學永)이다. 부인은 진사(進士) 유백린(柳伯麟)의 딸이다.

1828년(순조 28)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의 시험을 춘당대(春塘臺)에서 실시하였을 때, 강(講)에서 1등을 차지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다. 1829년(순조 29) 정시 병과 20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834년(순조 34) 홍문록(弘文錄)을 행할 때 3점을 얻었고, 1835년(헌종 1) 도당 회권(都堂會圈)을 행할 때 4점을 얻은 30인 선발에 포함되었다. 이후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에 임명되었다. 1842년(헌종 8)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로서 장릉(長陵)‧인릉(仁陵)의 친제(親祭) 때 대축(大祝)을 맡아서 가자(加資)되었다. 1850년(철종 1) 인릉(仁陵)에 친제할 때 예방승지(禮房承旨)로서 제관(祭官)으로 참여하여 가자되었다. 1855년(철종 6)에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의 부사(副使)에 임명되었고, 1857년(철종 8)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1860년(철종 11) 성균관대서성(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였다. 1866년(고종 3)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제수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장준호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